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조각품 중에는 작가의 이름을 모르는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 있다.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토스’ 작품이 유명한 것은 나신(裸身)의 뒷모습 때문이다. 등줄기에서 허리에 이르는 부드러운 곡선과 살아 움직이는 듯 생명력 있는 엉덩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마프로디토스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구조를 다 갖췄는데 실제 조각에서도 여성으로 착각했다가 남성임을 발견하고는 놀라기도 한다. ‘뒷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미술가도 있다. 네덜란드의 요하네스 페이르메르(1632-1675)는 자기 자화상을 정면이 아니라 뒷모습을 그렸는데 이처럼 뒷모습을 자화상으로 그린 것은 드문 일이다. 그는 자기 뒷모습 그림을 굉장히 사랑했다. 미술 시장에 내놓지도 않고 끝까지 자신이 소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뒷모습에서 예술가로서 살아온 인생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렇듯 남자건, 여자건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뒷모습에는 표정도 없고 제스처도 없지만, 그 실루엣만으로도 그 인생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연인들이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사랑의 밀도를 읽듯이 인간이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삶을 읽는다. 어깨가 축 늘어져 힘없이 걷는 사람의 뒷모습에서는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고, 주먹을 불끈 쥔 사람의 뒷모습은 분노, 결기, 도전 같은 강렬한 무엇을 느끼게 한다.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워싱턴을 떠나던 날, 긴 코트에 가죽 장갑을 끼고 헬기에 오르는 뒷모습은 언젠가 다시 워싱턴 권좌로 돌아오겠다는 오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거처할 플로리다의 리조트에 도착하자 인근 주민들이 함께 살고 싶지 않다며 거부하는 바람에 짧은 기간만 머물기로 했다니 대통령을 했지만 역시 뒷모습이 아름답지가 않다. 검찰총장 임기를 4개월 앞두고 퇴임한 윤석열 전 총장의 뒷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는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검찰 청사를 떠날 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 하겠다”고 했는데 그 해석이 분분하다.
1970년대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서울시장이 있었다. 군 출신의 김현옥. 길을 뚫고 다리를 놓는 등 서울을 탈바꿈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면 판자촌이건 빌딩이건 거침없이 철거하고 공사를 벌였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러나 1970년 4월8일, 그 유명한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희생자 장례식에 참석, 눈물을 흘린 후 곧바로 사표를 던지고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장관에 서울시장까지 지낸 사람이 고향으로 내려가 시골 중학교 교장선생님으로 변신했는데 그 뒷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하기도 했다.
LH 사태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데 LH 사장이었으며 이 문제의 중심에 있는 변창흠 건설교통부장관의 ‘사의’가 화두가 되고 있다. 대통령은 그의 사의를 수용한다면서도 그가 추진하던 ‘주택정책’ 작업을 마무리 하라는, 말하자면 조건부 수용이다. 사실 그는 이 문제가 터지고 LH직원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장관 자리에 있는 모습이 국민의 눈에는 거슬렀다.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 그 자리를 어정쩡하게 지키고 있어 뒷모습은 물론 옆모습마저 볼 성 사나워졌다. 처음부터 말썽 많던 그를 장관에 임명한 대통령이나 LH 사태에 분노하고 있는 국민이나 그의 뒷모습을 보는 마음이 심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시 인간은 뒷모습이 중요하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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