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청소년들에게는 명작 ‘슬램덩크’가 있었다. 농구의 기본조차 모르던 풋내기 강백호가 진정한 바스켓맨으로 거듭난다는 스토리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런데 또 하나의 감동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이다.
중학MVP 출신인 정대만은 연습경기 중 불운의 부상을 입고 폭주족의 삶을 살며, 농구부원을 폭행하고 농구부를 없애고자 불량배들을 끌어들여 코트에서 패싸움을 벌이는 등 철저히 농구를 증오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증오의 심연에는 깊은 애정이 있듯, 결국 정대만은 “농구가 하고 싶어요”라는 눈물 섞인 명대사를 날리며, 다시금 팀에 복귀한다.
이런 정대만의 눈부신 변화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재기하는 모든 이에게 큰 희망을 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만화 속 이야기로,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주인공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최근 학폭미투의 바람이 매섭다. 프로배구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선수의 중학시절 학폭사실이 밝혀지며 촉발된 미투는 이제 야구나 축구와 같은 다른 스포츠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거의 잘못으로 지금의 삶까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게 가혹하다는 반론도 있지만, 최근 논란이 되는 학폭의 수위를 보면, 철부지 10대 시절 저지른 장난이나 실수로 보기에는 그 죄질이 너무 불량하다.
하지만 최근 학폭미투는 우리 체육계가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크다. 엘리트선수 중심의 육성시스템은 지도자와 선수, 선배와 후배와 같은 엄격한 서열화를 고착화했고, 성적만 좋다면 모든 게 용서되는 성적지상주의는 메달을 위해서는 얼차려나 막말같은 가혹행위조차 정당한 훈련으로 용납되는 고질적인 병폐를 만들었다. 결국 우리 사회가 인권을 최우선가치로 두고 급변하고 있을 때, 체육계만은 기존의 악습을 답습하며 어린 학생들의 고통을 외면해온 것이다.
그동안 체육계 스스로의 자정작용에 맡겨둔 결과 받아든 성적표는 참담했다. 이에 최근 정부와 지자체 주도하에 학폭 연루자에 대한 철저한 신상필벌과 체육인들의 인권보장을 위한 각종 정책이 추진되며, 체육계에 일대변혁이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제도가 아닌 사람이 문제다. 체육인 모두 “라떼는 말이야”는 생각부터 지워야 하는 것이다.
슬램덩크 속 정대만의 활약은 눈부시다. 하지만 픽션이 아닌 현실에서는 분명 피해자가 존재하고, 그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반영되는 순간, 더 이상 만화가 아닌 다큐가 된다. 그러니 부디 ‘만화는 만화일 뿐, 따라하지 말자’.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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