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까지 일본에는 마비키(間引き)라는 풍습이 있었다. 마비키의 사전적 의미는 ‘솎아낸다’지만, 현실에서는 극심한 생활고로 인해 이른바 ‘키울 아이만 남겨두고 나머지 아이는 속아낸다(죽인다)’는 끔찍한 악습을 뜻한다. 당시 일본사회는 7세 이하의 아이들은 신의 아이라고 하여, 마비키 역시 영아살해가 아닌 단지 신에게 아이를 반환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마비키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은 채, 하나의 성스러운 전통처럼 이어져 온 것이다.
아무런 저항능력도 없는 영아를 부모의 필요에 의해 살해하고, 그에 대해 단죄하지 않는 사회, 이를 가리켜 ‘야만의 시대’라 부를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세계 10대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에서 현대판 마비키가 발생하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가해자에게 면죄부가 아닌 극도의 낮은 법정형을 통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경기도 고양시의 한 빌라의 건물 사이에서 탯줄과 태반도 제거되지 않은 상태로 꽁꽁 얼어 있던 여아의 사체가 발견됐다. 수사 결과 해당 빌라의 4층에 살던 친모가 화장실에서 아이를 출산한 뒤, 곧바로 창밖에 던져 숨지게 한 것이었다. 이토록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친모에 대한 처벌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애당초 영아살해에 대한 낮은 법정형 때문이다.
영아 살해는 법정형이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그 하한이 없다. 그렇다 보니 최저 법정형인 1개월 징역은 물론 집행유예 가능성도 크다. 일반 살인죄의 법정형인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중형과 비교된다. 실제 지난 2019년 아이를 낳자마자 변기에 집어넣어 숨지게 한 친모와, 갓 출산한 영아를 이불로 싸서 살해한 친모 모두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또한 우리 형법은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를 전제로 영아살해를 인정하고 있다. 혼외자 출산이나 경제적 어려움, 출산 직후 산모의 일시적인 정신이상만 있어도, 영아살해의 큰 혜택(?)을 받는 것이다. 이는 영아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인명경시 풍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문제이다.
영아가 자라 아동이 된다. 우리 사회가 ‘정인양 사건’에 대한 공범의식을 갖는 건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진작에 바꾸지 않았다’는 원죄 때문이다. 영아살해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경제적 이유와 같은 비겁한 변명은 통하지 않도록 법정형을 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산모가 신원을 노출하지 않은 채 정부의 철저한 보호 아래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돕고, 이후 입양을 통해 좋은 부모와 맺어주는 보호출산제 도입도 시급하다.
현대판 마비키, 이제 그만 끝내자.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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