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힘든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요. 환자에게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때, 그 순간이 가장 괴롭습니다.”
감염병동에서 코로나19 확진자를 돌보는 간호사의 말이다. 5년 전 메르스에 이어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까지, 간호사는 감염병 사태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숨 막히는 방호복 속에서 물 한 잔 편히 마실 수 없는 이들에겐 전문성을 넘어 의지와 사명감이 필요했다. 의료진이 흘린 땀방울은 ‘K-방역’이라는 성과를 일궈냈지만, 때로는 과중한 업무에 지쳐 쓰러지기도 했다. 사태가 길어지면서 보통의 사람들은 전대미문의 감염병 사태에 익숙해지고 적응하려고 하고 있다. 이는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들은 어느 때보다 필사적인 심정으로 환자들을 지켜내고자 한다. 공공의료기관이라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이곳 감염병동에서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임성경 책임간호사(45)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코로나19 사태가 시작한지 1년이 흘렀다. 국내 첫 확진자가 나왔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A. 2019년 겨울, 뉴스로 처음 발병 소식을 접했다. ‘우한 폐렴’이라고 부를 당시엔 그저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전 세계적으로 확산했고 현재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 3월 감염병동으로 지원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보건 당국과 의료진의 노력이 있으면 빠르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보다 구체적인 방역 체계를 갖췄지만, 의료진의 마음가짐은 지금이 더 필사적이다. 확진자가 연일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데다 메르스는 39명의 사망자를 내고 끝났지만, 지금은 그 끝을 가늠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Q. 감염병동은 어떤 곳인지, 이곳에서의 일상을 들려준다면.
A. 감염병동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를 돌보고 있다. 이곳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방호복을 입는 것부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레벨D 방호복과 N95 마스크, 고글, 페이스 쉴드, 덧신 등 장비와 함께 기본적으로 장갑도 2~3개씩 착용한다. 때에 따라 전동식 호흡 장치(PAPR)와 얼음팩, 얼음 조끼 등까지 착용하면 몸 위에 10가지가 넘는 장비를 걸치게 된다.
가을, 겨울로 넘어오면서 감염병동 환자들의 중증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요양병원 등에서 감염돼 오신 분들이 많은데 이들 대부분은 스스로 돌보는 게 불가능한 ‘와상 상태’인 경우가 많다. 중증도가 올라간다는 건 더 세심한 간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간호는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결국 사람의 손길이기 때문이다.
Q. 간호사로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인지.
A. 심폐소생술이 진행되는 순간, 환자에게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가장 괴롭다. 의료진을 힘들게 하는 건 답답한 방호복 속에서 참아야 하는 생리적 욕구가 아니다. 방호복을 몇 시간 입든지, 음압병동에 몇 시간을 들어가야 하든지 해야 한다면 하겠다. 환자들에게 적절한 치료를 해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못하겠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매일 1천명에 육박하는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데, 중증 환자들이 갈 수 있는 병상은 턱없이 부족하다. 환자들을 빠르게 이송해줘야 하는데, 살고 싶다고 말하는 환자들을 돕지 못할 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Q. 감염병 최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간호사에게 어떤 지원이나 변화가 가장 필요하다고 보는지.
A. 아픈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인력이다. 특히 간호 인력은 환자들을 대면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숙련도가 필요하다. 그만큼 환자에게 깊이 다가갈 수 있고 보다 세심하게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하다. 작게는 휴식공간부터, 근로적인 측면에서의 보상 문제도 중요할 것이다. 간호사도 결국 생계가 달려 있는 직업이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코로나19 사태를 잘 마무리 짓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전체적인 의료 체계와 자원에 대한 구조가 더 촘촘하게 세워졌으면 한다. 메르스 사태를 겪어봤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없이 많은 돌발 상황이 있었다.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감염병은 언젠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때를 잘 대비할 수 있길 바란다.
Q. 새해를 맞아서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에 임하는 각오를 들려준다면.
A. 2020년에는 경기도에 계신 모든 분들께서 무탈한 일상을 많이 기대하고 그리워 한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거리두기 조치로 타격을 입었고, 학생들은 학교도 제대로 나가지 못했다. 간호사이기 전에 한 명의 시민으로서,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당연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경기도의료원은 도민을 위해 존재한다. 의료진은 공공의료기관의 일원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도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1년에는 하루빨리 코로나 사태가 종식돼서 건강한 경기도, 건강한 대한민국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경기도의료원의 모든 간호사와 모든 의료진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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