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카페] 헬렌 켈러와 베토벤의 ‘합창교향곡’-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2020년 한 해를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코로나 19로 인한 상실감과 허전함은 크다.

올해 초 입사한 신입사원들의 마스크 벗은 이미지를 상상할 수 없다. 얼굴을 가리고 체온과 QR 코드로 검증되는 불투명한 정체성, 이웃과의 접촉이 최소화되어버린 현실은 아쉬움을 넘어 막막함으로 이어진다. 연주자들의 섬세한 표정은 소리 이상의 중요한 표현의 방법이다. 그러나 마스크를 착용하고 무대에 오르는 기이한 상황은 슬프기까지 하다. 평범한 시각으로 볼 때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소통의 한계를 넘어 아름다움을 공유한 두 분을 소개한다.

미국 출신의 작가 겸 사회사업가 헬렌 켈러 (1880~1968)는 1924년 뉴욕필하모닉에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나는 어젯밤 라디오 전파로 흘러나오는 뉴욕필하모닉의 ‘합창교향곡’을 들으며 위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청력을 잃은 내가 어떻게 들을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내게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시각/청각장애인으로서 새로운 영역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라디오 스피커에 나의 손을 대고 퍼져 나오는 울림을 느끼려 했습니다. 단단하게 닫힌 병뚜껑이 열리듯 진한 음악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열정에 가득한 리듬, 지속적으로 고동치는 각 성부의 울림은 나의 횡격막을 요동치게 하였습니다.”

‘합창교향곡’이 음악사와 세계사에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높고 크다. 베토벤(1770-1827)은 작곡 당시 프랑스 혁명이 주창하는 자유와 평등사상에서 얻은 영감을 형제애와 박애정신으로 승화시켜 교향곡의 새로운 형태를 혁명적으로 개발한다. 청각능력이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그의 불행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으며 남은 생이 길지 않음도 인지하였을 것이다. 이 작품이 인류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이유는 작곡 당시 베토벤은 처절하게 외롭고 고립된 절망의 시간의 정중앙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후세를 위해 위대한 유산을 남기는 일에 몰두한다.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이용하여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장르의 교향곡을 만들었다. 음악역사상 최초로 인간의 목소리를 교향곡에 담은 것이다. 네 명의 솔리스트와 혼성합창단이 “친구들 이여, 이런 노래가 아닌 더욱 즐겁고 기쁨에 가득한 노래를 부르자!”라는 시작으로 후대에 위로와 용기 그리고 사랑이 담긴 메시지를 곡의 구석구석에 스며들게 하였다.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연주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헬렌 켈러가 느꼈던 천사들의 합창, 천상의 바이브레이션, 부드러움과 달콤한 대화, 아름다운 멜로디의 위대함, 그리고 여기에서만 체험하는 어둠과 빛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한밤중에 수많은 별을 세는 것과 같다. 그녀가 들을 수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손으로 타고 들어온 목관의 부드러운 파고와 금관 악기의 자연을 표현하는 숨소리, 갈대의 흔들림 같은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진동, 바다보다 깊은 소리의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외침을 정상적인 청각을 가진 청중들은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헬렌 켈러의 메시지는 오늘의 우리를 향해 큰 울림을 남긴다. “믿음은 산산조각난 세상을 빛으로 나오게 하는 힘이다. 눈이 먼 것보다 더 안 좋은 것은 볼 수 있지만,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

세계 곳곳에서 고난을 극복하는 형제들에게 무한한 위로를 보낸다. 250년 전에 베토벤을 또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르쳐 준 헬렌 켈러와 같은 위대한 선배들이 우리에게 있음은 황폐한 환난의 시기에 큰 위로이자 축복이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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