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관객 없는 극장은 가능할까

극장을 뜻하는 시어터(Theater)는 고대 그리스 야외극장의 객석에서 유래했다. 오늘날 실내극장도 그리스 야외극장에서 비롯됐다. 주로 도시, 즉 폴리스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던 고대 그리스 야외극장 형태가 로마중세르네상스바로크시대를 거치면서 실내로 들어와 자리 잡았고, 이게 오늘날 실내극장의 일반적 모습으로 굳어졌다.

수 천 년의 이 변천과정에서 변하지 않은 세 가지 요소가 있다. 객석과 무대, 무대장치가 그것.

그리스 야외극장의 세 가지 요소를 지금 극장에 대입하면 이렇다. 일단 객석은 그대로 객석인데, 실내로 들어오면서 배우들의 연기공간인 무대와 무대장치에 변화가 있었다. 무대는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에서 연기공간인 스테이지로, 스케네라는 고정된 무대장치 공간은 무대와 그 안의 다양한 무대 변환 시스템으로 한 몸을 이루었다. 오늘날 실황 연주자들의 반주 공간인 ‘오케스트라 피트’는 과거 연기공간이었던 오케스트라의 흔적. 르네상스 이후부터 오케스트라는 연기 공간이 아닌 음악 연주단체(오늘날의 교향악단)의 의미로 어의가 바뀐다.

이 장구한 서양 극장 역사에서 극장이 객석, 즉 테아트론(theatron)이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깊이 되새겨볼 만한 일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극장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객석의 관객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관객 없는 극장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극장이 무대를 필수로 한 공연예술의 심장이라면, 그 현장에서 심장의 박동을 울리는 주인공은 관객이다. 현장과 관객, 극장이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공연은 완성된다.

코로나19라는 몹쓸 괴질이 퍼지면서 극장폐쇄가 속출했다. 다중이 모이는 곳이니 극장은 이런 때 어떤 극단적 처방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물어보나마나다. 마침 전국의 극장들이 현명하게 대처하여 극장을 중심으로 심각한 전파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방역엔 성공했으나, 극장 중심으로 돌아가야 할 공연산업은 침체의 늪에 빠졌다. 전시공간을 매개로 하는 시각예술 분야도 어려운 형편은 매 한가지이다.

그 사이 극장마다 발 빠르게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확충하는 등 침체를 벗어나려는 노력에 몰두했다. 이때다 하고 일각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여기에 미래가 있는 양 호들갑이다. 놀라운 기술 발달 시대에 공연이 기술과 만나 영역을 넓혀나가는 일은 더 오랜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 하지만 현장 관객 없이 공연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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