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한예종 이전의 조건들

서울 석관동에 본부가 있는 한예종의 정식 명칭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이다. 투박한 정식 명칭 대신 흔히 ‘한예종’으로 불린다.

인터넷에서 한예종을 검색하면 ‘국립 특수대학교 4년제’로 뜬다. 4년제 국립대학이란 말과 다르지 않은데 굳이 학교라고 할까. 그냥 대학교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기 쉽지만, 이 학교라는 이름에 한예종의 자부심과 지향이 담겼다.

한예종은 종합대학의 단과대에 해당하는 여섯 개 원(院)으로 구성됐다. 종합은 단과대의 종합체인 종합대학처럼 여러 원을 모았다는 의미. 그런데 대학교가 아닌 학교다. 설립 당시부터 기존 대학의 보편적인 체제와 교육 목표를 좇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예종은 ‘실기전문교육기관’이다. 기존 대학의 예술교육이 학문적인 영역에서 예술을 탐구한다면, 한예종은 직업 예술가 양성이 목표. 이론보다 실기를 숭상한다. 중세 이후 도제식 교육으로 직업 예술가를 양성하는 서양의 컨서바토리를 참고했다.

그로부터 개교 30년을 목전에 둔 한예종의 현재는 어떤가.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임동혁,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영화 ‘기생충’의 박소담 등이 이곳 출신이다. 관성적 대학예술 교육을 탈피한 ‘학교’가 ‘예술한류’의 산실로 성장한 것이다.

현재 세 곳 살림을 하는 한예종이 몇 년 안에 이전한다고 한다. 뿔뿔이 흩어진 교사를 한 데로 모은 통합 캠퍼스를 그리고 있는데, 명문 반열에 오른 이 학교를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나의 일터인 고양시도 유치를 강력히 희망하는 지자체 중 한 곳. 몇 해 전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 설문조사에서 ‘서울잔류’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하니 언감생심은 아닐까. 그럼에도, 한예종 이전과 관련, 관계자들에게 몇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첫째, 통합성이다. 흩어진 학교를 한데 모아 교육 효과를 배가하려면 너른 교사와 기숙사 등 학생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각 원 간 분야(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융복합의 협력 환경을 만드는 데도 넉넉한 시설 공간은 필수다. 지자체의 이런 공간 제공은 탈(脫)서울의 이점 중 하나다.

둘째, 연결성이다. 학교 교육이 지역 내 인프라와 어떻게 연결되느냐 하는 문제다. 한예종이 실전에 강한 프로페셔널 육성을 목표로 관습을 타파해 성공했다면, 학교의 이전 문제에서도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한 건 아닐까.

셋째, 확장성이다. 이미 배출한 인재들이 증명하듯, 앞으로 한예종의 무대는 세계다. 국립예술기관으로서 통일시대의 예술교육에도 대비하려면 한예종의 통합 캠퍼스가 반드시 서울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싶다.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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