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레바논 폭발사고와 분노한 민중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지난 4일 발생한 폭발사고로 200여명의 사망자와 6천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베이루트 항구에 6년간 적재된 2천750t의 질산암모늄이 폭발해 발생한 이번 사고는 레바논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초대형 사고로 그 파괴력이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20~30% 수준이다. 이에 수천 명의 시위대가 베이루트 도심광장에 몰려나와 무책임한 정부와 여당인 헤즈볼라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지중해 동쪽에 위치한 레바논은 중동지역 이슬람국가들과 달리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종교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다. 연중 날씨는 온화하며 강수량도 풍부해 올리브와 포도, 야채 같은 농산물과 과일이 풍성하다.

그러나 레바논은 독특한 정치시스템으로 인해 중동 지역에서 내적 갈등이 가장 많은 대표적인 국가이다. 이슬람과 기독교를 중심으로 주요 종파만 18개인 다종교 국가 레바논의 구성원들은 국가보다 소속 종파에 대해 훨씬 높은 소속감과 충성도를 보인다. 1943년 독립 이후 두 번의 내전을 겪으며 현재까지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이면에는 종파간 권력분배제도와 이익을 위한 종파간 합종연횡 등의 배경이 있다. 종파간 갈등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건설 과정에서부터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3년 프랑스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하면서 레바논은 3권을 종파별로 분배하는 국민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54%로 다수를 차지한 기독교와 22.4%를 차지한 수니이슬람 그리고 19.6%를 차지한 시아무슬림의 인구분포에 따라 대통령직은 마론파가, 총리직은 수니파 그리고 국회의장직은 시아파에 할당됐다. 그러나 각 종파 간의 상이한 인구증가와 소수 종파의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종파 간 갈등이 표면화됐고 1975년부터 15년간 지속된 내전을 통해 이러한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2018년 레바논 총선에서 이란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세력이 승리함으로써 레바논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돼 지역 패권을 둘러싼 주변국들 사이의 갈등이 더 참예해졌다.

레바논은 여느 때보다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해있다. GDP대비 170%에 이르는 국가부채, 9개월 사이 80% 넘게 폭락한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 하락 등 정부와 여당 헤즈볼라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이루트 폭발참사로 레바논이 겪어야 할 경제적ㆍ정치적 혼란은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레바논 정부는 피해 규모를 30억~50억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한때 ‘중동의 파리(Paris)’, ‘중동의 금융 허브’로 불릴 만큼 명성이 높았던 레바논이 다시금 중동의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다. 레바논이 하루빨리 폭발 참사에서 회복되기를 바라며 정치적 안정을 통해 이전의 영화(榮華)를 되찾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김수완 한국외대 아랍어통번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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