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평화를 위한 랩소디

미 대선이 3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백악관의 주인이 바뀔 것인지에 관심이 많은 것은 한반도의 안위와 한미관계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계란형의 오벌 오피스에는 모서리가 없지만, 묵직한 의자에 앉는 지도자에게는 각(角)도 있을 수 있고, 특별한 세계관도 있을 수 있다.

외교안보 이슈에 누구보다 해박한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가 현재의 여론조사 추이대로 11월3일의 결전에서 승리하면 종종 일방주의 성향이 드러나는 전임자의 외교방식을 탈피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미 방위비 분담의 책정 방식부터 동맹의 가치를 경시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성의를 보이려 할 것이다. 하노이의 교훈을 배경 삼아 충분한 실무 합의 없이는 선뜻 미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생각도 없을 것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평양의 권위주의 체제에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민주당의 주류들은 협상을 위한 실무협상에 관심이 높을 수는 없다.

트럼프의 선거팀은 백악관을 그냥 내어줄 생각이 없다. 역대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사례는 극히 적고 현직의 프리미엄은 여전히 크다. 당장은 코로나 재난 지원금을 다시 각 가정으로 나누어 주고, 중국을 미국의 국익을 삼키는 공공의 적으로 설정하면서 전방위로 공격한다.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고, 휴스턴의 중국 총영사관의 문을 강제로 닫아 버렸다. 지지층을 결집하고 여론조사를 반전시킬 특단의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중국의 담대한 도전과 부상을 적기에 차단해야 할 중장기적인 전략적 사고가 당연히 수면 아래 잠겼다.

대선 전에 실무합의가 없는 정상회담의 시나리오가 오벌 오피스의 책상 위에 있을까. 무엇보다 평양의 화답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지난 7ㆍ27 전국노병대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자위적인 핵억제력으로 북한의 안전과 미래를 담보했고 핵보유국으로 자기발전의 길을 걸어왔다고 천명했다. 2017년 겨울 핵무력완성 선언에 이어 이제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했다.

미국은 러시아와 체결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작년에 파기한 후 이제 중국, 러시아와 함께 새로운 핵미사일 경쟁에 돌입했다. 핵 독점국들이 다시 본격적으로 군비 경쟁에 나서면서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고 압박하면 평양은 어떤 생각을 할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지구촌의 공존을 위해서는 작은 책임도 있고 큰 책무도 있다. 작은 책임을 제대로 부과하려면 고귀한 책무를 가진 대국들이 먼저 설득력도 가져야 하고 명분도 축적해야 한다.

인류의 공존과 번영을 위해, 생존을 위한 최후의 자위수단으로 핵무장을 해온 북한에 대해 평화와 번영을 촉구하기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이와 함께 핵을 독점하면서 지구 전체를 위협하는 강대국부터 핵무기 감축 논의에 진지하게 임해야 하는 것은 알프레드 노벨의 후예들이나 반전평화단체 회원들만의 생각일 수 없다.

징후가 감지되는 기후위기에 끝을 알 수 없는 글로벌 팬데믹의 위기가 중첩되고 핵미사일 확산 위기까지 가중되면 우리 모두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인류의 운명은 바보 몇 사람들의 손에 달렸다는 팝송 에피탑(Epitaph)의 마지막 구절이 떠오른다. 바보는 누구인가. 우리 모두 가운데 누구이다. 대개는 큰 의자에 앉아서 시가를 피면서도 칸트의 ‘영구평화론’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혼미의 이 시대에 진정한 해답은 ‘계몽된 국가이익’이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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