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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어디만큼 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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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어디만큼 왔느냐

이 노래는 4~7세부터 유아들이 하는 놀이다. 일단 가야 할 목적지를 정해 놓고 눈을 감은 후 출발하면서 뒷사람이 “어디만큼 왔느냐” 하면 앞사람은 “당당 멀었다” “어디만큼 왔느냐?” 또 물으면 앞 사람은 눈을 살짝 뜨고 목적지를 살피면서 “당당 멀었다” 하다가 나중에는 “다 왔다”고 한다.

목적지가 너무 빤해서 눈을 감지 않고 해도 이 놀이는 재밌고 감은 눈을 슬쩍 떴다가 감으면서 박자 맞추며 놀아도 정겹고 아늑한 추억의 노래다.

대망의 2020년 봄은 송두리째 날아가고 이제나저제나 손꼽던 유월도 칠월도 가뭇없이 넘어가고 있다. 얼마 전 티브이를 보니 한 어부는 너무나 가난하여 쌀밥이 먹고 싶어 열네 살에 고깃배에 올랐다고 했다. 그 어부는 바다의 성난 풍랑 앞에서 서둘러 어망을 걷어 올리고 있었다. 왜 그리 서두르느냐고 묻자 “자연 앞에 사람은 가랑잎과 같다.”고 답했다. 사람이 아무리 잘났어도 자연 앞에서는 가랑잎에 불과하다는 그 어부의 말은 바다 위에서 배 안에서 터득한 구릿빛 철학이리라.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언젠가는 끝나겠지 하면서도 기약 없이 끌고 가며 당당 멀었다고 하니 삼삼오오 눈만 뜨면 지극히 평범했던 일상을 그리워하며 아쉬운 마음들을 토해낸다. 그러면서 흐르는 물에 비누로 손 꼼꼼하게 씻기, 사람과는 일정한 간격 유지하기, 다중이용공간 안가기, 컵 식기 개인 물품 사용하기, 식사 때도 거리 유지하고 기침 예절 준수하기, 무엇보다도 불필요한 외출 모임 외식 행사 여행 연기하거나 취소하기, 집에 일찍 들어가기. 그래서 이 대목에서는 당연히 “언제까지 이래 살아야 하는 거야” 볼멘소리다. 그렇지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 맞다.

방학 때의 행복예절관 인기품목은 단연 예절학당이다. 읽고 쓰는 사자소학효행편 붕우편은 물론 한복 입고 절 배우기, 민화 부채 만들기, 다례실습, 식탁예절 등 4일간의 방학 학당은 애들만의 잔치가 아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학구열 높은 어머니들은 처음엔 서로 비교경쟁하는 듯하다가 나중에는 사교의 장이 되어 마지막 날엔 아이들보다 더 아쉬워한다. 겨울방학 예절학당이야 이미 넘어갔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름방학 예절학당은 열게 되리라 내심 기대했는데 칠월에 들어섰는데도 깜깜이가 되어 이제 도리 없이 모든 수업은 비대면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청소년 비대면 수업은 지역아동센터, 다문화, 그룹 홈, 대안학교,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진행하지만, 성인프로그램은 수강생 없이 강사만 수업을 진행하게 되니 이건 진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점과 상관없는 교양강좌를 꼬박 몇 시간씩 화면을 바라보고 경청할 수강자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생각해보면 기발한 아이디어를 착상해 내지 않고서는 완성도가 낮을 것 같아 어지러울 지경이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고 어제의 안부를 물으며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리고 집안의 대소사까지 바리바리 펼친다. 그러면서 보이차 어떻게 마실 것인가, 홍차의 모든 것, 말차와 우리의 녹차, 조상의 건강 음식, 임금님의 여름 보양식, 우리 술 가양주, 이야기가 있는 찻자리, 들꽃자수, 스카프 염색, 다화 등등 실제로 만들고 시음하며 평가한다. 이렇게 길들여진 예절관 수업이었는데 그 수강생들이 이론만의 온라인을 과연 마음 다해 들겠는가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먼저 뉴스를 보게 된다. 잦아들지 않는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불안하다. 설혹 당당 멀었다 하더라도 조심조심 하루를 연다. 머지않아 “다 왔다.”…. 분명히 그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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