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바른 교육만이 인간의 일탈 줄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그저 지나쳤을 타인들에 민감해졌다. 감염의 우려 탓에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은 꺼려지고, 마주하는 사람들의 행동에는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사람을 안 만나며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으니, 우리 모두 타인에 노출된 포로나 다름없다. 아파트라는 대규모 공동주거시설의 일상은 입주민뿐 아니라 급증한 배달업무 종사자 등도 함께 타야 하는 엘리베이터 이용에 밀접 접촉을 피할 길이 없다.

타인과 함께 탄 엘리베이터에서는 마스크는 물론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건만, 멈춰야 할 사적인 대화를 거리낌 없이 하는 자가 많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자도 있다. 대화나 기침에서 나오는 침방울이 감염원인데 그럼에도 타인이 있는 밀폐된 공간에서 전화나 대화를 하는 자들은 여전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사람들이 많은 커피숍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교육이 어떻게 된 것인지, 타인의 배려 속에 누리는 것이 나의 자유임을 잊고 많은 자가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자신만을 위한 행동을 추구하고 있다.

전파력이 높은 탓에 신규확진자의 동선이 방역의 주요 대상이다. 확진자는 격리도 되고 자칫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 누구라도 확진 판정을 받으면 패닉상태에 빠질 수 있다. 확진자는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모든 동선을 빠짐없이 밝혀야 하니, 사생활을 감출 일도 있고 추후에 있을지도 모를 불이익을 생각하여 대강의 것만을 말하고 싶어질 수 있다. 공포에 빠져있을 확진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비정상이 있을 수 있다면, 그들의 동선 파악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닐 수 있는 확진자가 좀 더 안심하고 동선 모두를 부담 없이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거짓말에 비난받아 마땅할 수 있지만, 최근 들어 사안을 냉정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비난에 가세하는 자가 급증하고 있다. 모두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정직함은 인간관계의 기본으로, 가정과 사회와 학교가 만들어내야 하는 인간의 기본품성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이 바르고 정직한 사람을 키워내고 있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법과 질서, 도덕과 양심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자업자득인 셈이다. 교육이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욕심을 부추기는 승리만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무한한 인권을 누리고 불편 없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 주장하며 자제나 절제는 자유나 인권의 구속인 양 비이성적, 비인간적 행동에 주저함이 없다. 개인의 불편한 삶은 사회의 잘못으로 몰아가며, 개인의 노력은 뒷전으로 하려 한다. 정치권이 부추긴 측면도 크다. 결국 개인들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많은 곳에서 대립과 반목으로 충돌과 일탈 행위들이 벌어지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믿기 어려운 가정 내 폭력, 성범죄, 살인사건 등 인간으로서 벌이기 어려운 끔찍한 사건들이 일상처럼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을 온 국민이 다 알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지, 한국의 방송은 범죄를 재구성이라도 해주듯 반복적이며 자세하게까지 전한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데 방송이 늘 가르쳐 주니 마치 부정행위의 안내자 역할을 자처하는 모양새이다. 퇴색해가는 방송의 역할이지만, 부정적 일색인 뉴스보도는 재고되기를 기대한다.

결국 인간의 일탈을 막아내야 할 교육이 전혀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인간은 보고 배운다. 바른 교육 없이는 바른 인간을 만들 수 없다. 비인간적 행태의 사회문제를 줄일 해법은 바로 교육에 있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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