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21세기 ‘언택트’ 르네상스

5월 30일 현재 세계의 확진자가 580만명(사망 36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유럽에서는 23만명(사망 3만3천명)의 환자가 발생한 이탈리아가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1347년부터 시작하여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이 희생된 흑사병이 창궐하였을 때도 이탈리아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현재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해 자가 격리와 사회적 거리를 시행하고 있는데, 14세기에도 격리(quarantine)가 흑사병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였다.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의 ‘데카메론’(Decameron)은 흑사병이 이탈리아 피렌체를 강타할 때 10명의 남녀가 시골에 피난 가서 10일 동안 머물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각자 하루에 한 가지씩 말한 100개의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흑사병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는 ‘데카메론’은 중세 사회의 타락과 부패, 인간의 탐욕과 계층 간의 갈등 등 다양한 소재들을 다루면서 당시의 엄격한 종교적인 삶에서 개성(個性)과 이성(理性)의 세계로 눈을 돌리게 함으로써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보카치오와 함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인 단테(1265∼1321)도 피렌체 출신이다.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edia)은 초기 르네상스를 일으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조각가 로뎅(1840-1917)이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문’을 조각한 것에 인간의 고뇌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흑사병은 유럽 사회에 엄청난 죽음을 가져왔지만, 당시의 작가, 화가, 조각가 등 문화예술인들은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문예부흥의 시대를 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문화예술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실내 공간에서 이뤄지는 연주회나 연극, 뮤지컬 등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공연 취소는 물론 70%가 넘는 프리랜서 예술인의 수입원인 아르바이트도 없는 상황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현재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대책에 매달리는 상황이지만 피해 상황 파악 등을 통해 지원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공연예술분야 코로나19 전담창구 운영’, ‘공연장 대관료 지원’, ‘프리랜서 예술인 위한 구직촉진수당 지원’, ‘민간 소규모 공연장 방역물품 지원’ 등 단기적인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5월 20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예술인 고용보험 의무적용법’이 통과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0일 취임 3주년 기념사에서 “코로나 위기로 드러난 취약한 고용안전망을 튼튼히 구축하기 위해 전 국민 고용보험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후 여야가 20대 국회에서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만이라도 하자는 합의에 이른 결과였다.

21세기는 컴퓨터화 및 자동화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언택트 원격사회’로의 전환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불특정 다수의 공간에서 상호교감을 기본하는 문화예술은 그 존재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영역이다. 기술의 발전 이면에는 심각한 환경오염과 사회적 불균형, 인터넷 중독과 가짜뉴스 같은 것들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위기와 ‘언택트’ 시대의 변화 속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제2의 르네상스를 일으킬 주역이 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임봉대  국제성서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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