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이란 이름의 들쥐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 있다. 겨울을 앞두고 다른 들쥐가족들이 열심히 일하며 먹거리를 모으는 동안, 프레드릭은 동그마니 앉아 풀밭을 내려다보거나 졸음 섞인 눈으로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은다. 겨울이 깊어지자, 비축했던 먹거리는 다 떨어져 가고 들쥐들은 생기를 잃게 된다. 그때 프레드릭은 잿빛 돌 틈에 웅크리고 있던 가족들에게 찬란한 금빛 햇살을 보내주며 들쥐들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풀밭에 피었던 꽃들을 떠올리며 알록달록한 색깔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들이 추운 겨울을 지치지 않고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알게 한다.
그렇다. 프레드릭은 예술가다. 그리고 우리는 이 화창한 봄날에 지독한 바이러스로 인해 잿빛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독일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한국인의 글이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공연이 취소되자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허무함에 휩싸였다는 그는 “만약 당신이 예술가가 쓸모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번 자가격리기간 동안 음악과 시와 책과 영화와 그림 없이 보내보기를”이라고 쓰인 포스터를 마주하고 힘을 냈다고 한다.
이성적으로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어른과는 달리, 아이들에게 자가격리시간은 그야말로 몇 배나 지겹고 어렵기 그지없을 터이다. 거의 모든 도서관이 문을 닫아 책을 맘껏 보기도 쉽지 않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세계의 많은 어린이문학가가 SNS 라이브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의 작가 중에서는 작년에 방한해 한국 그림책독자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던 맥 바넷이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맥의 북클럽’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자신이 쓴 그림책과 챕터 북을 매일 읽어주며 세계의 어린이 독자들과 만난다. 눈에 띄는 점은 시청하는 아이들도 모두 모자를 쓰고 참여하며 온라인 상에서 오프라인의 연대감을 만들어나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맥 바넷은 만화가인 숀 해리스와 의기투합하여 북클럽 모자를 만들어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동네서점을 돕자는 계획을 세운다. 그 결과로 15일 만에 약 16만 달러가 모금되었고 171곳의 서점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게 되었다. 독자와 작가가 사이버상에서 만나고, 프로젝트를 만들어 지역 문화의 산소통인 동네서점을 응원하며 코로나19로 인해 무채색이 되어가는 사회에 그들이 모았던 알록달록한 색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출판계에서도 그림책 <위대한 아파투라일리아>의 지은 작가가 책을 기반한 프로그램으로 SNS라이브방송을 통해 어린이 독자들과 만나는 등 여러 작가가 이러한 활동에 동참하는 중이다. 더 나아가 국내외 출판사들은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다양한 독후활동지를 만들어 무료로 공개하며 지금까지 들려준 그들의 이야기를 깊고 즐겁게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출판계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나, 서커스, 오페라 등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문화 예술의 결정체들이 코로나19 극복을 기원하며 온라인에서 무료로 공개되고 있다. 국가 간에는 출입을 통제하며 장벽이 높아져 가고, 사람들 간에는 사회적인 거리 두기로 인해 얼굴을 마주하기는 어려운 때다. 하지만, 사이버상에서는 수많은 ‘프레드릭’이 모아둔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들로 우리들이 느끼는 마음의 거리를 좁혀지는 요즘이다. 이 잿빛 시간을 잘 견디면 ‘진정한 봄’이 오겠지.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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