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끝나갈 즈음 초등학부모는 개학 날짜를 하루하루 손꼽아 센다. 애들 개학만 하면 만나자고 겨울방학 내내 휴대전화기로 주고받았던 그 개학이 사월이 오고 있어도 기미가 심상치 않다. 하루 삼시세끼를 고스란히 챙겨 먹이는 세 아이의 어머니 역할에 이젠 지쳐가고 있다고 투덜거리던 엄마가 사월에 개학을 할까 봐 오히려 개학을 미뤄야 한다고 또 투덜거린다.
사월이다. 사월은 땅속의 온갖 웅크렸던 소리가 저마다 일제히 노랗고 빨갛게 또 푸르게 목소리를 낸다. 잠시 고개를 들어 돌아보기만 해도 일부러 흙을 비집어 살펴보지 않아도 천지간에 사월은 봄을 뿌리고 있다. 사월의 공원 벤치에는 전깃줄의 참새처럼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노인들이 턱을 괴고 졸았지만 빈 의자 앞으로 마스크 쓴 빠른 걸음들만 오간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너와 나는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마주 보고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고개를 맞대고 골똘하면 더욱 안 된다. 악수는 주먹으로 맞대고 엘리베이터 단추는 손 등으로 누르고 버스 손잡이는 장갑을 껴야 하고 마주 오는 사람은 미리 거리를 조율하며 비켜가고 말을 할 때는 눈을 보지 않아야 한다. 코로나가 이제 눈으로도 옮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박물관, 미술관은 물론 목욕탕, 극장, 도서관 그리고 소소한 모임에도 절제가 요구되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래가면 우울증 오겠다고 휴대전화 속에서 오가는 걱정들만 풍성하다. 사람이 죽어도 조문을 못 가고 예식을 알려와도 통장으로 송금하며 임산부와 고령자는 재택근무 길어지고 일 년 농사 첫 프로그램은 정한 바 없이 휴강으로 더욱 암울한데 쥐꼬리 봉급과 예산은 삭감하여 코로나19 쪽으로 힘 보태야 한다.
코로나19는 재택 내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사는 동안 좀 쟁쟁 거리기는 했으나 기실은 참 여유로운 자유와 넉넉함이었던 삶이 아니었나 싶다. 생존이 좀 곤하긴 했어도 바로 곁에서 생명을 위협당하거나 경제가 파탄되어 공포나 위기를 느끼게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개인의 삶은 물론 전 세계가 기약 없이 공포 속에서 떨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가고 오는 데 제한 없이 내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편하게 오가며 소통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제약을 받게 됨으로써 동안 누렸던 풍요가 값진 것임을 새삼 느낀다.
이 봄 코로나19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긴 했으나 몽땅 다 불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차츰 늘어나면서 켜켜이 쌓인 사용하지 않던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옷가지 신발 책을 앞에 두고 버릴까 말까를 수없이 주저주저하는 참 신기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또다시 사월은 오고 사월의 봄바람은 분분한 아침 뉴스를 실어 나른다. 전 세계가 전염병과 대치하고 방심한 부주위로 개인과 집단 확진자 숫자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남녀노소 안 가리고 나라도 신분도 종교도 돈도 명예도 따지지 않는 코로나19, 재난은 재난이다. 이 어마 무시한 재난을 극복하려는 정부와 함께 우리는 스스로 행동수칙을 지켜야 할 일이다. 봄부터 시작할 일을 여름에 시작하여 가열 찬 연말을 보낸다면 내년 이맘때는 또다시 사월이 오게 될 것이고 그때는 오늘의 이 재난을 따뜻하게 스토리화 될 것으로 희망을 품는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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