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있을까? 전래동화 콩쥐 팥쥐에 보면 계모인 팥쥐의 엄마가 콩쥐에게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 넣으라고 심술을 부린다. 불가능한 일을 시켰다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다나오스 왕의 딸 49명이 남편들을 살해한 죄로 지옥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형벌을 받는다. 물론 콩쥐는 두꺼비의 도움으로 계모의 심술을 일단락시키지만 다나오스 왕의 딸들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벌을 아직도 받고 있다.
과연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있을까? 조금 오래되었지만 2001년에 개봉되었던 <달마야 놀자>라는 영화에도 보면 이 선문답(禪問答) 같은 과제가 나온다. 속세에서 사고치고 산사로 숨어든 건달 일당과 수행 중이었던 스님들이 엎치락뒤치락 기(氣) 싸움을 벌이는 중에 노(老)스님이 던졌던 과제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먼저 채우는 쪽이 일승(一勝)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온갖 기발한 생각을 동원하지만 밑 빠진 독을 채울 수 없었던 한순간 건달 중 하나가 그 독을 들고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버렸다. 건달이 일승을 거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후에 건달 두목(?)이 노스님에게 자기들을 감싸주는 이유가 뭔지를 묻는다. 자기들에게 착하게 살라든지, 남을 괴롭히지 말라든지 뭔가 원하는 것이 있어서 자기들을 감싸주는 것이냐고 따지듯 하자 그러는 너는 밑 빠진 독을 어떻게 물속에 던질 생각하고 던졌는지를 노스님이 물었을 때 건달은 그냥 항아리를 물에 던졌을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때 노스님은 “나도 밑 빠진 너희를 그냥 내 마음속에 던졌을 뿐이야. 나도 모르는 문제를 풀어놓고선 뭘 모른다고 자꾸 물어봐?”라고 하신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있을까? 이 말은 밑이 빠진 독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듯이 노력이나 시간을 아무리 들여도 보람이 없는 일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래서 콩쥐에게는 계모의 심술로, 다나오스 왕의 딸들에게는 형벌로 적용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영원히 풀리지 않을 과제만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밑 빠진 독 같은 문제, 밑 빠진 독 같은 인생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에 던지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병에 물을 담으면 물병이 되고 술을 담으면 술병이 되며 꽃을 꽂을 때는 꽃병이 될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에 신(神)을 담으면 신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아무리 밑 빠진 독일지라도 그 마음에 담기만 하면 신의 마음으로 채워져 어떤 어려움과 갈등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고 하였다.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스스로 낮추신 그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이다. 그래야 갈등도 해결되고 미움도 해소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신의 마음을 품는 내 속에 던지기만 하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삶을 얼마든지 살 수 있겠다는 말이다.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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