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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 칼럼] 종이 호랑이는 싫다
오피니언 변평섭 칼럼

[변평섭 칼럼] 종이 호랑이는 싫다

1970년대 미국인들의 생활 패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음식에는 소금이 많이 들어가 짠맛을 내었고 캐딜락 같은 큰 승용차가 점점 작은 차로 바뀌었다. 심지어 큰 저택을 선호하던 주택 취향도 작은 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무엇이 이렇게 우쭐대던 미국인들을 왜소하게 만들었을까? 사회심리학자들은 그 첫째 이유로 베트남전쟁의 패배를 꼽는다.

10년 동안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젊은이들 5만8천여명이 목숨을 잃고도 맨손으로 무참히 철수하는 모습은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흔들어 놓았다.

곧 이어 벌어진 워터게이트 사건과 닉슨 대통령의 퇴출은 미국인들의 도덕심까지 땅에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미국인들 자존심에 결정타를 가한 사건은 이란에 있는 미국 대사관이 점령되어 40여명의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잡은 것.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미군 특공대가 1980년 4월 카터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구출작전에 나섰다가 이란의 황량한 사막에서 모래바람 등 예상 못한 장애물로 실패하고 인명손실만 가져 온 것이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자존심이 말이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속에 영화 ‘슈퍼맨’ 이라던지 ‘람보’ ‘원더우먼’ 같은 것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허전한 미국인들을 달랬다.

이들 영화 모두가 황당할 만큼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여 적을 박살내는 것들이다. ‘종이호랑이가 싫다’ ‘강한미국’을 갈망하는 미국인들의 가슴을 파고 든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인들은 ‘강한 미국’을 캐치프레이스로 들고 나온 공화당의 레이건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과연 레이건은 확실하게 미국의 안보를 이끌었고 불법 파업에 대한 단호한 조치 등등…국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아 재선에도 성공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은 1637년 병자호란 때 인조 임금이 청태종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을 한 소위 ‘삼전도의 굴욕’ 일 것이다.

임진왜란을 겪은 지 얼마 안돼 또 다시 겪은 전란에 백성들 삶은 피폐해 졌고 민족자존심은 송두리째 짓밟힌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암 송시열은 효종과 더불어 ‘북벌론’을 내걸고 준비를 해나갔다. 그 당시 국력으로 청나라를 정벌하는 게 가능했을까?

그러나 그의 ‘북벌론’은 국가안보에 늘 당하기만 했던 백성들에게 큰 정신적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백성들은 일본의 침략에 지쳤고 오랑캐의 침략까지 당하면서 희망을 잃고 있었다.

이럴 때 송시열의 ‘북벌론’은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요즘 들어 국민들 마음에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 주 그와 같은 우려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북한이 5월에 이어 또 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우리 영공에서 러시아, 중국, 일본 등 4개국 전투기, 폭격기, 정찰기 등 30대가 뒤엉켜 자칫 큰 위기를 가져 올 뻔한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국방부, 군 당국이 보여 준 자세는 국민들 눈에는 매우 어설프기만 했다.

1983년 9월 러시아는 우리 대한항공 여객기가 그들 영공에 들어 왔다는 것만으로 로켓을 발사, 269명의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 갔다. 그러고도 지금껏 사과 한 번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렇게 까지는 못해도 그들 정찰기를 강제착륙까지는 가능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단호한 의지 없이는 안보는 국민을 안심시킬 수 없다. 상황 발표문 하나도 눈치를 보며 북한에 대해서도 할 말 못하는 우리 처지가 참 안쓰럽기만 하다. 호랑이가 되어야지 종이호랑이가 되어 선 안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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