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처음으로 읊은 깨달음의 노래(오도송·悟道頌)는 대개 화려하고 비유적이며 자신이 직접 작성하기 마련이다. 반면, 이들이 입적할 때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는 노래(열반송·涅槃頌, 임종게·臨終偈)는 화려한 언사도, 비유도 거의 없으며, 친필로 남기기도 하지만, 제자가 받아 적기도 한다.
깨달음의 노래를 처음 지은 이는 9세기 당나라의 동산스님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개울을 건너다 개울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동산과수(洞山過水)라는 게송을 남겼다고 한다.
그 뒤로 하나의 전통이 되어 많은 선사가 후인들에게 깨달음의 지표로 깨달음의 노래를 남겨 줬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언절구나 칠언절구 형태의 한시로 작성돼왔다. 법정스님처럼 형식적이라는 이유로 남기는 노래를 남기지 않은 분도 있지만, 우리말 시나 시조의 형태로 남긴 분도 더러 있다.
지난 5월 말 입적한 설악산 신흥사의 무산 조오현스님은 돌아가시기 약 2달 전인 4월 초에 발표한 시가 그의 남기는 노래가 됐다.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 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돌이켜보면 내가 시인으로 등단하고 지금까지 글을 계속 써 온 것은 바로 오현스님 덕택이었다. 스님의 ‘절간이야기’라는 작은 시집을 읽다가 그 가운데 ‘파도’를 발견하고는 만나본 적도 없는 그 시인을 동경하기 시작했고, 정신없이 시인의 작품을 찾아 읽었다. 모든 시가 다 좋았지만 ‘허수아비’ 나 ‘아득한 성자 이야기’, ‘적멸을 위하여’ 등을 보고는 그 시인의 마음을 연모하게 됐던 것이다.
“밤늦도록 책을 읽다가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먼바다 울음소리를 홀로 듣노라면 천경(千經) 그 만론(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란다”
이 시가 오현스님의 깨달음 노래이며, 낙산사에 계실 때에 쓴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선승이나, 시인이나, 학자의 공통점은 ‘그 무엇’을 찾아가는 구도의 길을 걷는다는 점일 것이다. 대학에서 평생을 지나며 정년이 가까워진 나는 이러한 게송(揭頌)처럼 무엇을 남길 수 있나 하고 생각해 봤다.
꼭 40세가 되는 해 국제학술지에 처음 주저자로서 논문을 실었을 때를 떠올려 봤다. 동반저자로 실었던 적은 많았지만 내가 주저자가 되었을 때의 감동은 비로소 학계에 첫발을 내디딘 성취감을 주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나의 ‘깨달음의 노래’이라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 후 20여 년간 마치 스님이 도를 닦듯 끊임없이 논문을 썼고 그것이 출간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됐다. 간혹 내가 쓴 논문들이 인용될 때의 뿌듯함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도를 설파한 듯한 환상에 젖게 하였다.
내가 학자 생활을 마칠 때, 그래서 더는 논문을 쓰지 못하게 될 때는 내가 쓴 논문들을 모두 살펴보련다. 그리고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한 편을 골라 나의 ‘남기는 노래’라고 이름 붙이려 한다. 비록 스님의 게송처럼 입에 착 달라붙는 시구가 아니더라도 내 삶의 무게가 모두 실렸을 테니.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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