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은 바라보는 시점(視點)에 따라 그 형태가 다르게 보인다. 가까운 곳의 작은 사물이 먼 곳의 큰 사물보다 크게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보기 방식을 최초로 발명하여 활용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이다. 이것은 3차원을 2차원으로 옮기는 창의적 기법으로 당대 최고의 건축가 부르넬레스키가 발명했다 한다. 화가들은 원근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수준 높은 화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은 모두 완벽한 원근법을 구사하고 있다.
원근법을 적용한 모든 그림에는 소실점이 있어 먼 곳의 사물들은 화면에서 사라진다. 투시원근법의 전통은 서양의 합리주의와 과학의 산물로서 20세기 초까지 서양미술을 관통하는 중심 원리였다. 뿐만 아니라 서양의 근대를 지탱해온 시각 원리였다. 서구문화를 기반으로 교육받은 우리 역시 투시원근법에 익숙해 있다. 하지만 동양의 그림들은 서양과 달라서 먼 곳의 사물을 가까운 곳의 그것보다 더 크게 그리기도 하고 중요한 사물들을 크게 그리는 등 서양의 원근법과는 다른 시각을 구현해내고 있다. 물론 중세의 서구 미술 역시 중요한 존재를 크게 강조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같은 지역이라도 문화적 차이에 따라 보는 방식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르네상스 이후의 미술은 원근법뿐만 아니라 어두운 곳과 밝은 곳을 구별하는 명암법과 입체법이 사물의 사실적 재현 효과를 극대화했다.
20세기 말 나타난 현대미술은 일반인들에게는 무척 난해하게 여겨진다. 대부분 작품들에는 구체적인 형상이 화면에서 사라지면서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추상미술로 불리는 이러한 미술들은 결국 문화적 인식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다. 하나의 시점으로부터 다양한 시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으로의 변화이다. 또 그 시각의 결과물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이것이 추상미술을 탄생케 한 입체파의 시각이다. 결국 눈에 보이는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사물의 형태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객관적 보기로부터 주관적 보기로 옮겨간 것이다. 주관적 보기는 사물을 보되 느낌에 따라 형태를 왜곡시켜 보거나 외형보다는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 요소인 선, 색, 면만으로 보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음악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려는 태도로 진화했다. 결국 관람자들은 작가의 주관적 보기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작품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많은 관람객들에게 미술작품은 난수표와 같은 존재가 되어 현대미술을 어렵게 만들고 말았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은 정말 어려운 것인가? 21세기 작가들은 시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촉각과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에 의존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자신이 표현하고자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미술의 영역이 엄청나게 확대됐다. 그들은 단순한 시각적 보기에서 벗어나 사물을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예술작품은 아름다워야 하고 작가가 직접 그리거나 만들어야 한다는 인습을 탈피하여 기성품을 예술로 주장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추함을 미술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들은 근대 투시원근법이나 추상미술의 시각적 원리를 넘어선다. 사물이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려 하기 때문인데 이 관점들은 보는 이에 따라 작가와 공유점을 가지기도 하지만 전혀 새롭게 이해되기도 한다. 따라서 관람은 그 관점을 찾아내고 자신의 관점과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개입으로 충분하다. 현대미술은 관람자에게 열려 있고 그들이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상상하고 관점들의 접점을 제공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찬동 수원시미술관사업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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