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고농도 미세먼지가 연일 계속되면서 국민의 고통과 분노가 점차 커지고 있다. 정부는 처음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경보를 6일째 발령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건강을 위협받는 시민들이 체감할 만한 대책은 부족하고 상황을 점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마스크 착용과 외출을 자제하라는 재난 문자 이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것 아니냐는 자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미세먼지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이 폭증하고 있다. 중국 책임론을 지적하면서 우리 정부의 당당한 대응을 요구하고 미세먼지 악화로 인한 시민들의 걱정과 우려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학교 등 아이들이 이용하는 시설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해 달라는 의견도 상당수다.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은 “대용량의 공기정화기를 빠르게 설치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특수학교는 상반기 중 공기정화장치를 설치하겠다”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추가경정예산으로 재원을 확보해 연내 공기정화장치를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반응은 회의적이다.
대기환경 전문가들은 공기정화기 설치가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는 있겠지만 실내공기질을 깨끗하게 유지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다. 2018년 2월 교육부에 제출된 ‘초등학교 공기정화장치 효율성 평가 연구’에 의하면 공기청정기 설치가 교실의 미세먼지 농도 감소 효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환기를 하지 않거나 필터 청소 및 교체를 정기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폐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창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는 경우 교실 내 학생들의 날숨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CO2)도 문제다.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 수가 20~30명인 교실에서 창문을 닫고 40분 동안 수업을 했을 때 이산화탄소 농도는 2천200ppm까지 치솟는다고 한다. 학교보건법상 교실 내부의 이산화탄소 관리기준은 1천ppm이다. 1시간만 창문을 닫고 있어도 기준보다 두 배 이상 넘게 된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2천ppm 이상이면 하품, 졸음이 시작되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두통과 어지럼증까지 올 수 있는 수치다.
또 세계보건기구(WHO)가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라돈 역시 환기가 중요하다.
교육부 발표대로 모든 학교에 공기정화장치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약 2천300억원 가량의 예산이 소요된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교실마다 공기청정기 2대를 설치하면 과연 우리 아이들이 미세먼지로부터 자유롭고 쾌적한 공기질 환경에서 공부하게 될까. 자주 환기를 시키거나 장기적으로 다소 비용과 시간이 들더라도 언제나 환기할 수 있는 공조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효과적인 대책이 아닐까.
미세먼지 대책이 학교 공기청정기 설치 등 단편적이고 임시방편적 대응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는 미세먼지가 노약자 등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실태를 파악하고 국민의 보건권과 환경권을 보장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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