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때로는 슬픈노래가 좋아요

1975년 유승엽은 ‘슬픈노래는 싫어요.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요’ 로 가수 데뷔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 노래도 결국은 슬픔을 잊으려고 몸부림치는 행위의 일부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계단을 오르내리며 나지막이 노래한다. 아파트입구에서, 사무실에서, 주차장에서 잠시도 노래를 멈추는 일이 없다. 누군가가 들어주기를 바라며 부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연히 노래를 들으신 계단을 청소하시는 분은 “선생님은 늘 좋은 일이 있나 봐요?”라고 하신다. 이분처럼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야 노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국방방곡곡에 노래하는 그룹들이 많다. 어린이, 청소년, 어머니, 아버지, 남성, 여성, 혼성 등 나눌 수 있는 모든 카테고리에서 무수한 합창단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때때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시를 찾다 보면 주최측은 성악가의 동반을 강하게 원한다. 노래하는 연주자와 청중이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이처럼 음악은 오로지 행복한 순간을 위해 또는 즐거움을 고취시키기 위한 보조도구에 불과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곡가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음악에는 밝은 분위기의 장조(major)와 우울하고 슬픈 분위기의 단조(minor)로 구분된다. 조성의 선택은 작곡가들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18세기 작곡가 모차르트(1756-1791)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총 18곡인데 그 중 16개가 장조이고 2개만이 단조이다. 모차르트가 어머니를 잃고 작곡한 것이 8번 소나타는 가 단조이다. 동시대의 작곡가 베토벤(1770-1827)의 9개의 교향곡 중 가장 알려진 것은 제5번 ‘운명’ 다 단조 와 제9번 ‘합창’ 라 단조이며 나머지는 모두 장조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앞서간 하이든((1732-1809) 은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밝은 교향곡을 남겼지만 교향곡 44번 ‘슬픔’과 45번 ‘고별’의 조성에는 단조를 선택하였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1840-1893)는 6개의 교향곡을 남겼는데 제3번 교향곡을 제외한 5개의 교향곡이 모두 단조로 작곡되었다.

계단에서 청소를 하시는 그 분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저요? 슬퍼서 노래합니다”. 그 분이 들었던 나의 노래는 보고 싶은 부모님을 생각하며 부른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의 1악장이었다. 작곡가가 처절한 심정으로 빚은 선율을 나의 것으로 만든 것이었다. 지우고 싶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부끄러운 순간들이 뇌리를 스칠 때 평소보다 빠른 템포로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노래한다. 진정으로 나의 가슴에서 거칠게 진동하는 베토벤의 강렬한 주제가 아니면 그 순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병약한 아내를 향한 아련한 애틋함은 브람스의 교향곡 4번 마단조의 2악장 선율을 포근하게 노래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볼 수 없는 딸에 대한 그리움은 딸이 어릴 적 함께 불렀던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4악장의 주선율을 빌려 노래한다. 작곡가들의 창작효과가 극대화된 시점은 어머니를 잃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쓰라린 헤어짐 후, 극심한 혹평으로 모든 것을 빼앗긴 실패의 구렁텅이에서 처절한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시간 등이었다. 이런 순간들은 대체적으로 단조로 만들어진다. 슬픈 심정을 노래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한층 더 윤택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슬픔이 주변을 맴 돌 때 조용히 그리고 포근하게 노래하자! 그리고 잊지 말자. 진정한 음악의 가치는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상처받은 영혼을 쓰다듬을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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