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중국, 세번의 통일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요리가 인기를 얻고 있다. 자장면으로 대표되는 한국식 중국 요리 말고 중국 본토의 요리 말이다. 처음에는 양꼬치 정도가 유행하는 것 같더니 훠궈로 이어지고, 꿔바로우가 인기를 얻더니 최근에는 딤섬 등 좀 더 다양한 중국 요리들이 사랑받고 있다. 여기저기 중국 요리 거리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우리는 뭉뚱그려 중국 요리라고 말하지만 방대한 중국의 크기만큼이나 그 요리의 원천은 다양하다. 양꼬치만 해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서북쪽 이슬람교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이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 보편화된 것이다. 훠궈는 서쪽 쓰촨의 음식이 대중화된 것이고, 꿔바로우는 동북의 음식이 널리 퍼진 것이다. 딤섬은 남동쪽 광둥에서 즐기던 음식이다. 이들 음식 고향들 사이의 거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멀어서 예전에는 서로 음식을 맛볼 수 없었다.

이들 요리를 중국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게 된 것은 덩샤오핑이 추진한 개혁개방 이후의 일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따라 배울 모델을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선전을 필두로 샤먼, 광둥, 주하이 등을 거쳐 상하이에 이르기까지 발전의 시작점들을 만들고 이를 선으로 잇고 면으로 확대시켜 나갔다. 때마침 확산하던 텔레비전 등 대중매체와 교통 인프라는 이들 모범을 중국의 표준으로 만들어 확산하기에 용이한 조건이 되었다. 중국은 이로써 지역 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하나의 표준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걸어가는 통일된 행보를 보이면서 중국 내 자원들이 풍부하게 유통될 수 있었다. 중국의 음식은 그 와중에 지역을 넘나들게 되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야말로 거대한 중국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시키는 일이었던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덩샤오핑 평전>을 쓴 에즈라 보걸이 덩샤오핑의 업적을 한 마디로 중국을 재통일시킨 것이라고 주장할 만하다. 진시황 이래, 가장 놀라운 대륙의 통합이었기 때문이다. 진시황은 전국 시대를 끝내고 영토를 통일하자, 나라 안의 문자를 하나로 정비하고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시켰다. 통일 국가다운 단일한 인프라를 갖추었다. 이를 통해 중국 내부가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중국을 진의 영어 이름인 지나, 즉 차이나로 부르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덩샤오핑은 소통의 인프라를 넘어 중국을 비슷한 꿈, 비슷한 목표를 가진 구성원의 나라로 탈바꿈시켰다. 그가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 인민들을 경제발전이라는 통합적 사고로 이끈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G2 시대를 연 중국의 발전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중국은 진시황과 덩샤오핑이 이끈 두 번의 통일을 넘어 세 번째 통일로 향해가고 있다. 변화의 요인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터넷의 발달이다. 인터넷은 예전의 대중매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른 시일 안에, 아무리 먼 곳이라도 비슷한 생각을 실어 나른다. 이 인프라를 통해 시진핑 시대 ‘중국몽’이라는 하나의 꿈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중국이 무시당할 때 분노하는 애국의 정서가 보편화했다. 상하이의 패션이 동시에 충칭에서도 유행하고, 수도인 베이징의 프랜차이즈 음식이 윈난의 가정집에 배달되고, 중국 공산당의 단일한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레 자리 잡는다. 시간도 없고 거리도 없는 인터넷이 중국의 거대함, 중국 인구의 방대함을 무효화시키고 있다. 이 세 번째 통일이 중국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가늠하지 못하겠다. 일사불란해진 14억 인구가 가진 힘, 그것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길 바랄 뿐이다.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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