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바람직한 대체복무제의 기준을 마련하자

영국 총리 윌리엄 글래드스톤의 가방처럼 외국출장을 갈 때마다 가방에 넣는 서류가 다르듯이 민주주의 개념은 다의적이어서 한마디로 개념정의를 내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는 국민주권을 비롯해 자유·평등·정의·가치관의 다양성·관용(Tolerance) 등이 민주주의의 본질적 내용으로 들고 있다.

이와 맞물려 우리 사회는 소수자의 인권 보호라는 여러 가지 쟁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 등으로부터 유입된 난민의 인정 여부, 동성애 인정 여부, 양심적 집총거부 인정 여부 등을 둘러싸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이 중 2018년 6월28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집총거부 사건(2011헌바379 등)에 대해 역사적인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권문제 중 하나를 종결시켰다.

필자는 2017년 12월1일 한국헌법학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앞으로 한국헌법학회는 실사구시의 기치로 한국의 현안을 해결하는 사회적 의사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헌법학회는 2018년 3월 대만의 진신민(陳新民) 전(前) 대법관(大法官)을 초청해 ‘대체복무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했고, 2018년 5월15일에는 유사 주제로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 학술대회를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는데 나비효과 같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물론 기대와 다른 판결에도 양심적 집총거부자들의 시시포스(Sisypos, Sisyphus)와 같은 지난한 노력도 있었다.

그런데 대체복무 방안을 마련하면서 방식과 기간 등을 둘러싸고 여러 문제가 나오고 있다. 특히 양심적 집총거부자를 군대에 가기 싫은 이상한 사람으로 이해해 ‘교도소’에서 복무하게 하는 정부의 안은 문제가 있다. 양심적 집총거부자는 영어 표현(Conscientious Objector) 그대로 양심상의 이유로 일체의 전쟁을 반대하고 집총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들을 이단아처럼 적대하면 소수자의 인권은 설 땅이 없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민주주의 핵심은 가치관의 다양성인데 양심적 집총거부자를 교도소에서 복무하게 하는 안은 징벌적 성격의 복무방식으로 이들에 대한 나쁜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아니겠는가? 정부는 이러한 계획을 백지화하고 양심적 집총거부자가 교도소가 아닌 병원이나 요양원 등에서 복무하게 하거나 적정 수용시설을 마련해 복무하게 함으로써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또 유럽평의회 사회위원회가 2008년 그리스의 대체복무기간에 대해 “현역복무의 1.5배 이상의 대체복무기간은 징벌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본다”고 밝힌 것을 최대한 수용, 대체복무기간도 국제기준인 1.5배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양심심사의 적정한 기준을 마련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전심사절차와 엄격한 사후 관리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에서 지적한 사항을 잘 준비하고 이에 입각한 엄정한 집행과 헌법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적인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이 땅에 입헌주의에 기반을 둔 포용국가의 기틀을 확립해야 한다.

고문현 한국헌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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