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변화에 맞춰 ‘디지털 박물관’ 속도… 北 참여 대고려 특별전 추진”
지난해 7월 취임한 배 관장은 지난 1년간 쉴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올해 고려 건국 1100주년을 위한 대규모프로젝트 기획부터 디지털 박물관 구축, 남북의 관계개선에 따른 교류 활성화 계획 등 쉼없이 많은 사업들을 고민하고 추진했다. 또 지난 15일 ‘제73회 광복절 기념식’을 광복절 최초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치뤄냈다.
해외 문물을 소개하는 전시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지난 5월 한·몽 공동학술조사 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칸의 제국 몽골> 개최 등 몽골과의 지속적인 문화 교류와 사회 공헌 등으로 지난 17일 몽골이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몽골 우호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난 1년 동안 잘한게 있을까” 의문이 든다는 배 관장. 앞으로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Q 취임 1주년을 맞는 소감은.
A 1년이 좀 넘었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 막상 돌이켜 보니 제대로 한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인만큼 1년만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관은 아니다. 지난 1년 동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진 고민들에 대해 구성원들과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앞으로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 갈 수 있도록 체제나 프로젝트를 구축해 나갈 것이다.
Q 지난 1년간 가장 신경썼던 부분은.
A 현대사회에서의 변화는 상당히 잘 준비해야 한다. 특히 박물관의 개념 자체가 변화돼야 한다. 기존 보다 조금 더 확장된 개념을 우리 사회가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기능에 더해 여가를 위해서 오는 장소로서의 박물관을 요구한다. 이런 요구에 맞춰 하드웨어 구조를 바꿔나가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또 다른 하나는 세대나 직업 등에 관계 없이 박물관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해 단순하게 웹페이지에 정보를 올리는 차원이 아닌, 원하는 정보도 가져가고 먼거리에서도 전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박물관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Q 실제 많은 박물관, 미술관에서 모든 시스템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선도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진행 상황과 예상되는 효과는.
A 과거에는 관람객이 박물관에 직접 와야 했다면, 이제는 언제 어느곳에 있더라도 박물관에서 필요한 것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해외 박물관에서는 경쟁적으로 디지털 전담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지난해 ‘4차산업혁명 대응 혁신화 전략계획’을 수립하고, 올해 디지털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아울러 디지털 전시실, VR콘텐츠 제작ㆍ상영 등을 기획하고 있다. 디지털박물관이 구축되면 소외와 차별없는 문화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프로그램 구축과 디자인 등 관련 분야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Q 향후 남북 문화 교류에 대비해서도 많은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A 남과 북은 한민족이다. 오랜 시간을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었음에도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과거에 오랜 역사를 함께 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 이어지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이다. 남북 교류에 있어서 선도적으로 준비해야할 것이 문화교류 아니겠나. 국립중앙박물관은 남과 북의 공통분모인 문화유산을 공동으로 보존하고 연구 및 전시하는 등의 남북간 문화교류 활성화를 기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사업이 추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올해 하반기 열리는 고려전에 대비해 북한에 유물을 요청한 상태다. 아직 답은 없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가능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Q 그렇다면, 남북 문화 교류가 본격적으로 진행됐을 때 박물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A 제일 선두적으로 해야할 부분이 북한의 유물을 보존하고 처리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보존과학은 기술과 시설면에 있어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북한의 유물을 보존하는데에 우리 기술을 잘 활용해야 한다. 또 북한이 아직 디지털화가 덜 된 부분이 있으니, 우리나라의 선진화된 디지털 기술로 북한의 유물의 등록하는 작업과 남북한의 유물을 공동으로 정리하는 작업 등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
Q 올해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해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은 운영했다. 또 오는 12월 특별전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이 개막할 예정이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고, 특별전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A 수사적인 말보다 고려가 창출했던 문화가 중요하다. 우리 문화의 정수는 고려 문화에서 많이 생겨났다. 고려가 세워진 시기는 고대사회의 안정으로 교유한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금속활자, 청자 등 한민족 고유의 창의력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앞선 문물이 만들어 졌다. 고려전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고려의 문화 유산을 소개하고 재조명하기 위함이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 북한에 있는 유물을 대여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에는 태조왕건의 청동상 대여를 요청해 놨다. 고려전에는 해인사에 보관되고 있는 태조왕건의 스승인 희랑대사의 목조상이 전시될 예정이다. 태조왕건의 청동상과 그의 스승인 희랑대사의 목조상이 함께 전시된다면 한민족 정체성을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전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도록 북한의 협조를 바란다.
Q 많은 박물관 미술관들이 전시촉진법(압류면제법)과 관련, 국제 교류 전시를 추진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은.
A 해외 주요 박물관들은 전시촉진법이 미비한 국가에 대해서는 대여를 금지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압류면제조항을 마련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추진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고려전의 전시도 지장을 받고 있다. 현존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 대여를 위해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몇차례 협의를 진행했지만, 압류면제법 선결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Q 일부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고유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단순 전시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다. 박물관의 대표 수장으로서 한 마디만 하자면.
A 사회가 하도 빠르게 변하니까 여러 가지 덕목을 잃어버린다. 박물관은 단순히 경제적인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기관이 아니다. 역사를 기록하고, 문화를 창출하는 공간이다. 박물관은 좋은 유물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것들로 학예직들이 연구를 해야한다. 헌데 요즘은 지어놓으면 끝이다. 건물 짓고, 테이프 컷팅하면 모든 것이 절로 이루어 지는줄 안다. 유물을 구입하고, 학예사를 고용해 키우는 것은 다른 사회투자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또 박물관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사람이 모이면, 시장이 형성되고 수익을 창출 할 수 있다. 지역사회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박물관에 대한 투자는 돈보다 정성이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Q 내년도에 준비하고 있는 사업이 있는지.
A 민족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전시와 외국문화의 다양성 보여주는 전시를 준비 중이다. 31년만에 가야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도 준비하고 있다. 김해박물관과 일본에서도 선보일 계획이다. 또 2020년을 목표로 세계문화관 신설도 준비하고 있다. 세계도자실과 세계문명실로 구성해 박물관 2층에 마련할 계획이다. 세계도자실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신안 해저선 도자 컬렉션’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중국, 유럽의 도자기를 보여주고, 도자무역과 교류의 역사를 소개할 예정이다. 세계문명실은 지중해, 서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지역의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송시연기자 /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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