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기술·화합 삼위일체 ‘펜싱 코리아’… 세계무대서 일낼 것”
한국 에페 대표팀은 양달식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이후 지난 2년동안 국제그랑프리대회와 월드컵, 아시아선수권, 세계선수권대회에 16차례 출전해 지난해 세계선수권 단 한번을 제외하곤 15번의 대회에서 금메달 8개, 은 메달 5개, 동메달 9개를 쓸어담았다.
Q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이후 한국 남자 에페 대표팀의 역대 최고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
A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인전에서 박상영 선수가 금메달을 따낸 이후 감독을 맡아 부담감도 많았는데 우리 선수들과 소통화고 화합하면서 노력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도 기분이 좋다.
지난달 중국 우시에서 열렸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 메달이 없어 내가 감독으로 부임해 유일한 ‘노메달’ 대회였던 지난해 독일 세계선수권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단체전 은메달로 위안을 삼았다. 이를 계기로 다음 세계선수권대회와 2년 뒤 도쿄 올림픽에서는 꼭 금메달과 함께 개인전, 단체전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할 수 있도록 선수들과 함께 노력할 생각이다.
Q 양 감독은 현역선수 시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페 선수였지만 정작 지도자로는 오랫동안 근대5종 종목 코치로 외도를 하다가 뒤늦게 펜싱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는데.
A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현역시절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에 올라 좀 유명세를 타면서 근대5종 종목 쪽에서 나를 원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지도자로 활동한 뒤 그것으로 근대5종과 인연은 끝이라 생각했는데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중요 국제대회를 앞두고는 그쪽(근대5종)에서 계속 콜이 왔다.
그러다보니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두 번의 올림픽과 네 번의 아시안게임에 약 11년 정도 지도를 했다. 공교롭게도 그 때마다 결과가 좋았고, 2002 부산 대회에서는 김미섭 선수가 3관왕에 오르고, 인천 대회에서도 호성적을 거두다보니 펜싱인들에게 장기간 외도로 비춰질 수 밖에 없지않았나 생각한다.
Q 뒤늦은 펜싱 대표팀 감독 부임이었지만 요즘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일단은 오랜 선수와 지도자 경험을 통해 축적한 나만의 노하우와 기술적인 측면, 특히 타이밍 연습에 역점을 뒀다. 예를 들어 상대가 공격해 들어올 때 막고 찌르는 것이라든지, 상대의 허를 찔러 발을 공격하는 것이라든지 조그마한 기술적 보완이 도움이 된 듯 하다.
또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제일 중요한 것은 지도자와 선수간의 신뢰감이 쌓여진 것이다. 감독 코치와 4명의 선수가 무한 신뢰를 통해 긍정의 사고로 훈련과 경기에 매진한 것이 시너지 효과를 낸것 같다.
Q 펜싱 대표팀 사령탑으로 처음 맞이하는 아시안게임 개막이 불과 열흘도 남지 않았다. 목표와 각오는.
A 우선 내가 감독을 맡고 있는 남자 에페에서는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홍콩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등의 기량 차가 우리와 종이 한 장의 차이도 안나기 때문에 당일 컨디션과 팀웍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수 개개인이 가진 특기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멘탈 훈련도 병행하고 있다.
또한 펜싱 종목 총감독으로서 종목 최대의 8개 금메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종목 지도자, 선수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 계속되는 무더위에 잠 못 이루는 국민들께 시원한 낭보를 전하고 싶다. 각 국가별로 2명씩으로 출전이 제한된 개인전이 변수다. 대진 초반에 우리 선수들끼리 맞붙어 한 명이 탈락하는 변수만 없다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으로 본다.
Q 감독 개인적으로 이룬 것이 많다. 경기도 스포츠계 최초로 이름을 딴 ‘양달식 펜싱장’이 2011년에 건립됐고, 고향인 화성시를 ‘펜싱 메카’로 발전시켰다.
A 제 이름을 딴 펜싱장이 건립된 것은 개인적으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큰 영광이다. 이는 나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화성시와 경기도, 교육청, 그리고 경기도내 모든 펜싱인 등 주위에서 도와주고 노력해줘 이뤄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그리고 내가 운동할 때만 해도 여러가지 어려웠던 여건이 많이 좋아지면서 화성시가 펜싱의 메카로 성장했다. 주위에서 그 공을 내게로 돌리는 데 과찬이시다. 시에서 적극 지원해 주고, 중ㆍ고등학교와 우리 화성시청 실업팀 지도자, 선수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싶다.
Q 한국 펜싱이 엷은 저변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펜싱 강국으로 도약하며 각종 국제 종합대회에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데 원인은 무엇인가.
A 우리나라 펜싱이 유럽이나, 미국, 가까운 일본보다도 선수 층은 엷지만 그들 국가들은 전문적으로 훈련하는 선수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이 전문 선수가 아닌 생활체육으로 운동하는 동호인들이 주를 이룬다. 반면, 우리나라는 선수층은 엷지만 어려서부터 지도자들이 유망주를 발굴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많은 운동량을 소화하면서 기량을 다지기 때문에 그들을 압도하고 잘 할 수밖에 없다.
Q 앞으로 지도자로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A 내가 욕심이 많아서인지 아직도 우승에 대한 갈증이 많고,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펜싱 종목 지도자로 참가해보지 못한 올림픽 무대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금메달을 만들어내고 싶다. 현재 멤버들의 기량도 좋고 팀웍과 신뢰도도 좋기 때문에 2년 뒤 도쿄 올림픽에서 충분히 메달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펜싱은 어떤 종목 보다도 참 변수가 많고 당일 컨디션에 따라 결과가 뒤바뀌는 변화무쌍한 종목이다. 언제 어디서든 내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 경기도와 한국 펜싱 발전에 기여한 지도자로 기억되고 싶다.
황선학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