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안타까운 역사가 있다.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박탈당한 뒤 36년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명칭을 사용할 수 없었고, 대표적으로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의 꽃이라는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사상 처음으로 2시간 30분대의 벽을 무너뜨리고 2시간 29분 19초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하여 금메달을 수상하면서도 시상식에서 기테이 손이라는 일본식 이름이 호명되고 애국가 대신 일본국가인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가 게양됐던 일은 대표적 예로 꼽힌다. 당시 손기정 선수가 마치 죄라도 지은 듯 더욱 고개를 떨구며 괴로워하던 모습은 이후 국민의 가슴속에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그러던 우리나라가 헌법을 갖게 됐다. 헌법은 국가의 3대 구성요소인 국민, 주권, 영토 등을 일반적으로 규정한다. 1948년 제헌헌법에서도 위 3대 구성요소를 명문으로 규정했다. 헌법을 갖는다는 건 주권국가로의 선언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은 우리나라가 제헌헌법을 갖게 됐다는 사실에 감동해 매일 아침 헌법 낭독으로 하루를 시작했을 정도다.
국회에서는 1987년 제8차 개헌 이래 30여년 만에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발족해 제10차 헌법개정안을 마련하려고 했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여·야간의 첨예한 이해관계로 대립으로 인해 합의된 개헌안조차도 마련하지 못하면서 30여 년 만에 도래한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26일 헌법개정안을 내놨다. 본문 1개장 7개조, 부칙 3개항이 늘어난 개정안에는 수도 서울의 개념을 없애고, 국민이라고 표기된 부분을 사람으로 수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표결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의 직무유기이며, 이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이 시급하다.
지난 제헌 70주년 기념축사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은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 뿐만 아니라 국민이 모두 합심해 제헌헌법의 정신을 개헌을 통하여 지속 가능하게 계승발전시키려고 노력함으로써 각자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국경일이자 공휴일이었던 제헌절은 2005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 시 공휴일이 많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로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국가의 기본법이자 최고법, 즉 국가의 기본 틀인 헌법을 제정한 날이 공휴일이 많다는 이유로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후 헌법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 세월호 사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건 등이 나오게 됐다. 그 어느 때보다 국민 관심이 헌법에 닿아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하루빨리 위 규정을 개정해 제헌절을 원래대로 공휴일이자 국경일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뇌리에서 헌법이 잊혀서는 안된다. 모든 국민이 제헌절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고 헌법 수호 의지를 보여준다면 대한민국은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입헌주의의 모범국가가 될 것이다.
고문현 한국헌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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