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일본의 한 발레 콩쿠르 심사를 다녀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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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월·화·수 2박3일간 Japan Ballet Competition 심사 요청을 받아 짧은 일정으로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유니버설발레단 단원으로 활동할 때는 거의 매년 도쿄에서 공연했었는데 94년 발레단을 떠난 뒤 34년 만에 가보는 거라 도쿄가 어떻게 변했을까 많이 궁금했다.

 

1985년, 첫 일본공연 갔을 때가 기억이 난다. 발레가 우리나라보다 수십 년 먼저 도입이 되어서 인지는 몰라도 이미 일본은 일반 사람들이 발레를 보고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무척 부러웠다. 1981년 스위스 로잔에 Prix de Lausanne 콩쿠르를 보러 갔을 때에도 일본은 결승에 진출한 일본 학생들에게 일본 황태자가 주는 특별상이 있었고 방송국에서 준결승과 결승실황을 녹화하기 위해 현장에 많은 인원이 투입돼 있었다. 

지금도 일본은 매년 방송국에서 Prix de Lausanne을 실시간 Live로 방송하고 있고 일본학생들을 무대 안팎에서 집중적으로 취재해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응원받게 한다. 잘하든 못하든 출전한 모든 학생들이 배우는 과정,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때론 매우 감동적인 스토리를 전달하여 발레를 잘 모르던 사람들까지 발레를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이렇게 오랜 기간 국제콩쿠르에 투자하고 있는 일본에는 조금 미안할 정도로 10여 년 전부터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 딸들이 유수한 국제 콩쿠르에서 상위권 입상을 하고 있고 너무도 꿋꿋하게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주고 있다.

 

도쿄에서 콩쿠르 심사를 다 마치고 수요일 오후 일본 도쿄시티 발레단 연습실을 방문했다. 연습실을 새로 옮겼다고 해서 가 보았는데, 제 눈을 의심할 정도로 작고 열악한 연습실 환경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원은 60명이 넘는데 연습실은 좁아 발레단 클래스를 1ㆍ2ㆍ3부로 나눠 진행하고 있었고 월급도 없을뿐더러 공연 때는 의무적으로 공연티켓을 팔아야 하고 좋아하는 춤을 추기 위해 두세 가지씩 일을 하고 있다는 단원들이 그 좁은 공간에서 비 오듯 땀을 흘리며 행복한 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월급 없이 발레단에 소속되어 춤을 추라고 하면 몇 명이나 단체에 남아있을까.

 

지금은 일본과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할 정도로 우리의 발레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10년 후 20년 후의 발레계를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많은 걱정과 고민을 하게 됐다.

 

전국에서 발레를 잘한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예중, 예고에 입학을 하게 되고 국내ㆍ외 콩쿠르 또는 오디션을 통해 외국 유학을 가거나 발레단으로 입단한다. 예중ㆍ고 학생 중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는 부모님의 희생적인 뒷받침과 담당지도 선생님의 열정적인 지도의 힘으로 예쁘게 잘 다듬어져 콩쿠르나 입시에서 빼어나게 아름다워 보일 수 있도록 세팅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보니 부모님과 선생님이 없이는 자기주도적인 연습을 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이 있고 이런 학생들이 유학을 갈 경우 성공적인 미래를 보장받는 것이 매우 힘들어지게 된다.

 

이번에 도쿄에서 만났던 학생들이 체격 조건이나 기량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해 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표정과 눈빛, 질문에 바로바로 대답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창의적이어야 할 예술을 전공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창의력과 표현력은 어디 가서 어떻게 찾아주어야 하는 걸까. 10년, 20년 뒤에 우리 발레 꿈나무들이 일본으로 발레를 배우러 가는 일 만큼은 절대로 안 생겼으면 좋겠다.

 

김인희 발레STP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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