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백지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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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1승은 이루지 못했다. 남북 단일팀을 이룬 여자 하키 또는 메달 가능성 있는 주종목에 밀려 방송중계 또는 언론의 관심도 사라졌거나 미비했다. 

지난 4년 동안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출발하여 상상하기 어려운 체력, 전문적인 시스템, 열광적인 많은 팬들과 엄청난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는 유럽과 북미주 팀들과의 겁 없는 도전을 통해 성장하고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게 된 것만으로도 이미 그들은 승리자가 되어 있었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전패를 기록한 남자 아이스하키팀이다. 이 팀의 선장 백지선 감독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불모지인 이 땅에서 짧은 기간동안 보여준 그의 리더십을 다큐멘터리를 방송으로 보면서 뜨거운 눈물과 진실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내가 속한 오케스트라 분야에도 그의 리더십이 필요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가 배운 히딩크 리더십은 지금도 많은 분야에서 기본원칙 또는 모범사례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보여주고 있는 신드롬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다.

 

나는 최근 수년 여러 종목의 감독들의 인터뷰를 통해 지도자들의 확신과 신념의 지수를 볼 수 있었다. 어떤 대표팀의 축구 감독은 한 텔레비전과의 인터뷰를 통해 “오늘의 경기결과를 어떻게 보십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머뭇거리면서 “선수들이 일체감을 가지고 잘 싸워준 것 같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마치 남의 팀의 경기를 보고 제3인칭에서 대답하고 있었다. 

반대로 ‘~같습니다’라는 불확실한 표현은 백지선에게는 없었다. 그에게는 1인칭만 존재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무모하며 불확실하고 성공가능성이 0%처럼 보이는 목표를 “열심히 하면 목표를 이룰 것 같습니다”라는 표현 대신 “금메달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라는 단순한 한마디가 그가 가지고 있는 확실한 신념이었다. 

나의 미국 유학시절 초기에 한국의 명문대에서 아이스하키를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운동을 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보고 있던 한 학생과 가깝게 지냈는데 그 학생은 중간에 운동을 포기하면서 기본체력이 미국 선수들에게 너무 떨어져 도저히 훈련조차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백지선 감독은 그가 동양인으로서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하기까지 그만이 경험한 말할 수 없는 고초가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함을 알았고 이를 바탕으로 선수들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백지선 감독 같은 리더들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내가 속해 있는 음악계에도 이런 리더들이 필요하다. 본인들의 무사안일을 위해 사회가 요구되는 창조와 변화의 사명을 게을리한다면 그가 속해 있는 연주단체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열정의 순수함을 잃지 않고 내 몸을 불사르는 자세로 리더의 사명을 감당할 때 그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백지선 감독을 수용하고 지원해준 아이스하키협회와 스폰서들도 대단하다.

돈키호테와 같이 풍차를 공격하기 위해 뛰어드는 무모함을 지원해준 결과가 이제 그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대한민국 여러 분야의 암초들이 하나씩 부서지고 그런 과정 속에 우리 다음 세대들이 갖고 있는 꿈들이 공상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 공동사회가 그들을 위로하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의 다음 세대는 무엇으로 이 지구촌에서 살아남을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정리되어야 한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말러와 스트라빈스키도 당대에는 앞서가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였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득권 세력들에게 그들은 기이한 모퉁이 돌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가진 것을 귀히 여기고 가꾸어 나간 몇 명의 사람들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거장들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배울 것이 너무 많다. 우리의 스승은 나이와 상관없이 꾸준하게 주위에 산재되어 있다. 배우자 그리고 변화하자. 그것이 인생을 사는 가장 큰 행운이 아니겠는가?

 

함신익 함신익과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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