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뿌리 깊은 오케스트라 전통을 이어받은 남아메리카의 오케스트라들은 기반이 꽤 단단하다. 특히, 할라파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멕시코 최초, 최고 오케스트라의 단원이라는 긍지가 매우 높다. 나는 10여 년 넘게 이 오케스트라와 매년 객원지휘자로 연주를 해왔다. 올해도 10월 초에 2주 동안 연주를 한다.
이곳에서 연주할 때마다 느끼는 바는 단원들이 늘 ‘흥’이 넘친다. 멕시코 사람들의 생활만족도가 높다고 들은 적이 있다. 하여튼, 끊임없는 천연 무공해 ‘흥’이 넘치는 음악가들과의 연주는 실로 값진 경험이다. 할라파에 올 때마다 묵는 호텔이 있다. 호텔 내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아침시간에 악보를 보면서 이 마을에서 갓 재배한 신선한 커피 향을 즐기는 것이 나의 ‘흥’이 된 것이 꽤 오래되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할라파 출신 40세 초반의 ‘하비에르’는 자연스럽게 나를 담당하여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2년 전쯤, 하비에르와 내가 어느 정도 친숙해졌다는 느낌을 공유했을 때 그는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미국에서 전문교육을, 세계를 다니며 연주하고 있으니 꿈을 이룬 것 같아 행복한가요?”
나는 곰곰이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음, 어느 정도는…. 그러나 나의 갈 길은 아직 멀다” 그의 질문은 이어진다. “그러면 당신이 살았거나 방문해 본 여러 나라 중에서 앞으로 오래도록 살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끌어내는데 그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의 대답을 위해 필요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극히 빠른 속도로 그때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을 몇 초 분량의 필름으로 축약시켜 돌려보았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삼양동의 달동네, 유소년 시절 맘껏 뛰어놀았던 우이동 계곡, 파란만장한 군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간 배움의 시절, 가정을 이루고 첫 집을 장만하여 어린 딸을 키우며 살던 뉴저지 도시교외, 코네티컷에서 전원풍경이 있는 숲속에서의 생활, 그 밖에 스위스, 독일, 프랑스, 체코, 폴란드, 네덜란드, 러시아, 몽골, 브라질, 우루과이 등…. 셀 수 없는 삶의 다양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일분 정도의 빠른 영상이 스친 후 나는 하비에르에게 정리된 결론을 전한다. “하비에르, 세상에 어떤 곳이 우리에게 완전한 만족을 줄 수 있겠는가? En Paradiso 즉, 이 세상보다는 천국이 우리의 낙원이 아니겠는가?”라고 제법 시적이고 예술적으로 대답하려고 애를 썼다. 하비에르는 나의 대답을 듣고 옅은 미소를 입가에 띠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오늘 이곳이 나의 가장 행복한 Paradiso라고 믿고 있다. 이곳에서 낙원을 만들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어찌 영원한 Paradiso를 꿈꾸겠는가?”
부끄러웠다. 호텔 웨이터가 나름대로 관찰한 한국 출신 중년지휘자에 대한 평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홀로 식사를 하고 악보와 씨름하며 인생을 즐기기보다는 일하기 위해 식사하고 또한 그런 것을 매년 반복하는 지휘자의 삶을 지켜본 하비에르에게 비친 나의 모습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낭만을 만끽하는 듯 부러움을 살만한 마에스트로가 아닌 왕복 달리기를 분주하게 하고 있는 안타까운 인생에 불과했다.
우리에게는 오늘보다는 내일, 지금보다는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적절하게 희생하는 것을 귀히 여기는 문화가 있다. 우리의 선조들이 그렇게 하였듯 우리도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르는 것을 어색해하지 않는다. 천국 또는 극락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희생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는 2018년이 되기를 바란다. 미래의 행복은 오늘의 행복에서 시작되는 것을 깨우쳐준 하비에르를 이번에 다시 만나게 되면 함께 콰타펙이라는 커피농사가 유명한 옆동네에 가서 로스팅을 반드시 해오리라.
함신익 함신익과 심포니 송 예술감독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