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디지털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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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에는 갤러리 원이라는 색다른 전시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미술품은 없지만 작품의 구석구석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디지털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벽면에 설치된 10여 m의 큰 화면에는 미술관의 전시물들이 사진으로 나열되어 있다. 

이 사진은 주제별로, 시기별로, 방문객들의 선호도 별로 수시로 다른 무리를 이루어 나타났다가 또 다른 작품의 사진을 연달아 보여준다. 미술관을 방문한 이들은 벽 앞에서 보고 싶은 작품을 자신의 스마트폰 안으로 쓸어 담는다.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은 이 작품을 분석하여 관람객이 작품을 살펴보는데 가장 적당한 동선을 제시하고, 작품 앞에서는 증강현실 기법을 활용한 해설을 들려준다.

 

라스코 동굴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그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당장이라도 그림에서 뛰어나올 듯한 생동감 있는 황소그림은 선사시대 가장 위대한 걸작 중 하나로 여겨진다. 아쉽게도 이 그림은 우리는 직접 볼 수가 없다. 지하 동굴은 관람객들에게 노출되면서 급속도로 산화가 이루어져 그림의 보존에 문제가 되어 1963년부터 관람을 중단한다. 1983년 동굴 일부를 재현한 라스코2를 개장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였다.

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라스코3은 라스코 동굴을 핵심적인 부분을 재현하여 컨테이너에 설치하고 순회전시 중이다. 작년 여름 광명동굴 앞에서 이루어진 라스코 전시가 그것이다. 그리고 작년 겨울 라스코 벽화를 온전히 재현한 라스코4를 개관하였다. 이 전시장은 다양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여 당시의 식생과 형성과 변성 과정을 모두 재현하여 관람객들이 라스코 동굴은 물론 선사시대 이후 생태계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경주 토함산에는 세계문화유산인 석굴암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석굴암이 위치한 곳에서 보는 동해바다는 장관이다. 하지만 석굴암의 실물을 보기에는 제약이 따른다. 보존을 위해 큰 유리판이 설치되어 불상과 조각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기는 힘들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시내 쪽으로 10여 분 내려오면 경주엑스포 공원이 있다. 

공원 입구에는 황룡사 탑을 모델로 한 경주타워가 있다. 꼭대기로 올라가면 석굴암을 가상현실로 체험할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 석굴암을 첨단기술을 활용한 가상현실 콘텐츠로 만들어 실제 석굴암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실제공간의 제약을 기술을 통해 극복하고 석굴암의 모습 뿐만 아니라 석굴암의 건축구조 그리고 실크로드의 모습까지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문화유산의 활용과 보존의 노력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구글은 아트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유명 박물관의 소장품을 디지털화하고, 이를 온라인에 공개하여 누구나 시공간의 제약 없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내 기관에서 소장한 자료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경기도 박물관, 경기도 미술관, 백남준 아트센터,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의 유물도 디지털화되어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최근 경기도 박물관은 미디어 월과 영상체험존을 설치하여 대형 스크린에서 전시물을 확대하며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인근의 백남준 아트센터에 설치된 미디어 월에서도 백남준의 작품과 사진, 자료를 대형 스크린으로 살펴볼 수 있다. 

공간적인 제약으로 전시가 불가능했던 작품과 자료를 디지털 기술로 관련된 정보를 직관적으로 제공하여 이해를 쉽게 하고, 확대된 그림으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디지털화된 콘텐츠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공간이면 언제 어느 곳에서나 즐길 수 있어 벽 없는 가상의 박물관을 가능하게 한다.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다. 경기도 박물관의 새로운 시도를 계속 기대해보자.

 

김상헌 상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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