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어린 시절부터 영향력 있는 선생의 문하에 들어갈 수 있다면 올인하는 일부 부모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연유로 레슨비는 인플레이션이 붙어 형편에 따라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 버린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음악을 전공하려면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일부의 푸념도 있다.
요즘 같은 입시철에 악기를 메고 분주하게 거리를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서 베토벤의 불같은 열정과 낭만을 모방하고 들길을 뛰며 모차르트의 악상을 노래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음악을 전공하기로 비교적 늦게 결정을 한 나의 경우 모든 것이 새롭던 청소년 시절에 훌륭한 스승을 만나 레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의 자산이 되었다. 값으로 셀 수 없는 양분을 공급해 주신 스승님들은 출세나 진학을 위한 음악보다는 진실한 음악인의 자세를 깨우쳐 주셨다. 작고하신 나의 스승 피아니스트 김원복 선생님은 악기로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셨고 90에 가까운 고령까지에도 몸소 규칙적인 연습과 도전적인 연주로 제자들을 놀라게 하셨다. 난생 처음 경험한 그 새로운 세계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때의 가르침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연주생활에 측량할 수 없는 원천 에너지가 되고 있다. 나의 제자들을 같은 원리에 입각하여 가르치고 있으며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도 그런 예술가의 정신이 우선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지금도 여전히 서울의 곳곳에서는 입시를 위한 스튜디오들이 넘치며 진학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다. 수련과정으로는 필요불가결한 것이겠지만 자칫 예술보다는 입시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우려한다.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여 풍부한 배움을 갖는 것을 탓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더 넓은 세상에서도 경쟁력 있는 예술가로 키워내야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민간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며 이런 시스템에서 성장한 일부 연주자들과 함께 연습하고 무대에 서며 아쉬운 것은 아직 예술가로서 필요한 독창력의 부족함이다. 미국에서 교수로서 20년 넘게 가르쳐 온 바, 독창적인 음악의 해석을 한국의 음악도들에게서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틀리지 않게 수비 위주의 연주로서는 청중을 감동시킬 수 없다. 수비 위주의 축구로 명성을 떨치던 이탈리아가 2018년 러시아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했다. 감동이 없는 연주를 하던 그런 학생들이 후에 선생이 되면 크게 변하지 않은 사이클을 반복하기 쉽다. 남을 감동시키는 연주를 위해 적극적인 공격이 필요한 시대가 왔음을 인지해야 한다.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을 찾아 배움을 전수받는 것이 한국음악계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짧은 시간 내에 높은 점수를 따내는 운전면허 필기시험 준비와 같은 자세로 예술을 천직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머지않아 음악도들을 방황하게 만들며 최악의 경우 음악을 포기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다시 강남에 몰려 있는 연습실을 둘러보자. 한 명이 불어도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는 어떤 악기의 입시준비학생 여러 명이 작은 연습실에서 동시에 연습한다는 말을 듣고 과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환경에서 개성과 낭만이 넘치는 연주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획일화된 기현상이 어느덧 정상이 되어버렸다면 40년 전 나의 10대 시절에 비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 2017년 입시철에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함신익과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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