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연예인의 애완견에 물린 이웃이 사망하는 사례와 사망의 원인이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 여러 해 전 읽었던 박문하 선생(1918~1975)의 ‘어떤 왕진(1961)’이 기억나 책장을 다시 열었다.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요즘 불경기가 심해 환자들의 주머니 상태가 마치 7, 8월 가뭄에 말라붙은 논바닥같이 쪼들려서 외상치료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개업의들에게 김 사장같이 자가용으로 왕진을 청하는 여유 있는 단골 환자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사모님이 신경통이 도진 것인가 하고 갔더니 자기 집 순종 영국산 포인터를 치료해 달라고 했단 것이다. 고급 개라서 사람에게 쓰는 고급 항생제가 아니고선 잘 듣지 않을 것 같아 특별히 부탁을 한 것이라고 했다. 화자는 가축 치료는 해본 적이 없어 개를 평소에 친면이 있는 수의사에게 데리고 갔다.
그는 가축의 수술은 한 번도 구경조차 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호기심에서 가만히 수의사 등 뒤로 가서 그가 하고 있던 수술을 엿보았는데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가축용 수술대 위에서 수의사가 남루한 중년 부인의 유종(乳腫)을 수술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의사는 “요즘에는 하도 딱한 환자들이 많아 병원 갈 형편은 못되고 나를 찾아와서는 애원을 하기에 도리가 아닌 줄 알면서도 수술을 해 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화자는 돈 있는 집 개는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의사에게 갈 형편이 못되는 사람들은 수의사에게 치료받는 현실에 할 말을 잃었다.
이 글은 “서늘한 거리에 나왔으나 내 가슴속은 마치 무거운 납덩어리를 삼킨 듯이 답답했다. 가축병원의 수술대 위에 누워 있던 그 여인의 영양실조에 일그러진 얼굴은 언제까지나 내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고 그녀의 괴로운 신음소리는 무슨 원한의 주문같이 지금도 나의 고막을 바늘 끝으로 찌르고 있다”며 끝을 맺는다.
가까운 생활주변 소재와 섬세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정확한 플롯에 의해 쓴 글을 다시 읽다 보면, 화자가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어떤 절실함을 느낀다. 화자의 비판의식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으며, 이 글을 읽는 후배 의사인 나에게도 “너는 인술을 베풀고 있느냐?”고 준엄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56년 전 수필을 읽으며 작금의 의료 현실을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전 국민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는 시대, 환자가 처음 방문했을 때 시작하는 문진.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면 “어제 넘어졌는데 CT를 찍으려고 왔어요” 라든가, “가끔 머리가 아픈데 MRI를 찍어보려고 왔어요”라고 대답하는 시대다.
개를 유모차에 싣고 다니며 개가 아파 동물병원에 데려가면 사람보다 훨씬 더 높은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이 시대.
책장을 덮고 창문을 열었다. 초저녁 바람이 서늘했으나, 내 가슴도 납덩어리를 삼킨 듯이 답답하기만 하다. 살아 계셨다면 올해 99세이신 박문하 선생이 이 시대 의료 상황과 무슨 케어(Care)라는 정부 발표를 보셨다면 어떤 위트와 해학으로 멋진 글을 선보였을지 궁금하다.
황건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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