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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 칼럼] 牙山이 무너지나, 平澤이 깨지나
오피니언 변평섭 칼럼

[변평섭 칼럼] 牙山이 무너지나, 平澤이 깨지나

변평섭
변평섭
지도를 놓고 보면 경기도 평택과 충남 아산은 사람의 위턱과 아래턱처럼 서로 대치를 이루고 있다.

 

묘하게도 아래턱에 해당되는 충남 아산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묘소와 그를 추모하는 현충사가 있다.

 

반대로 임진왜란 때 충무공의 강력한 라이벌 관계였던 원균의 묘소는 서로 마주보는 평택에 있다.

 

속담도 아니면서 가끔 결판을 가려야 할 때, ‘아산이 무너지나, 평택이 깨지나’하는 말도 이들 두 장군의 갈등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는 평택의 일부가 1914년 4월 1일까지는 충남 땅이었다. 그러다가 조선총독부령에 의해 평택군 읍내면, 동면, 서면 등이 경기도로 편입이 된 것. 1973년 충남 아산과 경기도 평택사이의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관할 구역을 두고 양측이 충돌했다.

 

이때도 ‘아산이 무너지나 평택이 깨지나’하는 말들이 나왔다. 농지확보와 양식어장의 크기가 경계선에 따라 달라지니 싸움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말이 충무공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

 

오히려 1894년 7월, 이땅에서 벌어진 청일전쟁에서 비롯됐을 것이란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왕실경비와 동학군 봉기를 진압한다는 것으로 끌어들인 첫 외국군대는 청나라. 이에 발끈하여 일본군이 뛰어 들었고, 마침내 1894년 7월 25일, 아산만앞에 있는 풍도에서 청나라 북양함대와 일본의 전함이 불을 뿜었다.

 

청군은 임오군란을 진압했던 정여창(鄭汝昌)제독 휘하에 순양함 2척, 포함 1척, 민간상선 1척이 순양함 3척을 거느린 일본군과 맞붙은 것이다.

 

그 무렵 충남 아산에는 청군 3천 명이 주둔하고 있었고 경기도 평택 인근 성환쪽에는 일본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은 아산에 주둔한 청군을 중국 본토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 해상봉쇄를 시도했고, 이것이 마침내 ‘풍도해전’(海戰)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해전에서 청나라는 참패를 당했다. 병력 1천100명의 사상자를 냈고 전함은 모두 불탔으며 일본 측은 1명의 전사자도 없이 완승을 거두었다.

 

전투는 육지로 전개됐다.

 

풍도해전 사흘후인 7월 29일, 아산지역에 주둔하던 청국군과 평택쪽에서 내려온 일본군이 지금 국립 종축장(일명 성환목장)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것이다. 남의 나라에 와서 허락도 없이 싸움판을 벌인 청ㆍ일, 이때 ‘아산(청국군)이 무너지나, 평택(일본군)이 깨지나’라는 말이 강대국들의 싸움 구경만 해야 하는 우리 백성들 입에서 나왔을 것 아니냐는 것.

 

정말 우리는 얼마나 무력감에 빠져 있었을까?

 

결국 일본은 청군을 추격, 그해 9월 15일 벌어진 평양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두었고, 마지막엔 웨이하이에까지 쫓겨 청군의 항복을 받아 냈으며 북양함대 사령관 정여창(鄭汝昌)제독은 패배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지금 우리나라는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미국, 중국, 일본 등 강대국들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뜨겁게 부딪치고 있다. 민족의 생사가 걸린 절체절명의 안보문제인데, 사실 우리의 주장대로 ‘운전대’를 잡는데는 한계가 있으며 여기에는 지정학적 운명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요즘 다시 중국 TV에 우리 전지현이 등장했다 해서 좋아할 것도 아니고, 또 언젠가 가혹한 황사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이것이 중국의 패권이다. 이를 막으려는 미국과 일본의 해양세력, 그 가운데 끼어있는 우리는 바둑에서처럼 잘 놓았다는 바둑알이 오히려 자충수(自充手)를 만들어 버리는 결과가 되어줄 수도 있다. 이래저래 우리의 고민이 클 수 밖에 없다.

 

‘아산이 무너지나, 평택이 깨지나’ 그런 비극적 패착(敗着)은 다시 없어야 하는데….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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