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김정은의 막말 설전이 한창일 때 작가 한강이 뉴욕타임스에 보낸 기고문을 두고 요즘 설왕설래 말이 많은 모양이다. 누군가는 그의 역사관을 들먹이며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해서 조목조목 잘 짚어줘 후련하다고 한다.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의 이 기고문에는 평화를 소망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평소 알고 지내던 시인의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다. 뇌출혈로 쓰러진 그 아내는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맸다. 그러자 그는 동료 시인들에게 아내의 병실에서 시를 읽어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을 했다. 그러면 아내가 빨리 회복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그것이 매우 신선하고 놀라운 일로 다가왔다. 병상에 있는 환자를 위해 기도를 하는 일은 흔하지만 아내의 쾌유를 위해 시를 읽어달라니.
그러자 그 부부를 잘 아는 시인 몇이 병실을 방문해 시낭송을 했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그의 아내는 목숨을 건졌고 길고 무더운 여름 내내 통원하며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작년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지팡이를 짚고 남편과 함께 나타나서 주위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것은 시의 힘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소에 그의 아내는 시를 좋아했을 것이고 자신이 아는 시인들이 직접 찾아와 시낭송하는 것을 들으며 위안을 받고 삶의 의지를 다졌을 것이다.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2010년 칠레의 산호세 광산에서 광부들이 지하 700m에 매몰되어, 69일 만인 10월13일 구조되었을 때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지하 대피소에서 파블로 네루다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의 시를 낭송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버텼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광부들이 과연 어떤 시를 낭송했을 것인가. 과연 시를 낭송하기는 했을 것인가.
더러 신문지 깔고 밥 먹을 때가 있는데요
어머니, 우리 어머니 꼭 밥상 펴라 말씀하시는데요
저는 신문지가 무슨 밥상이냐며 궁시렁 궁시렁하는데요
신문질 신문지로 깔면 신문지 깔고 밥 먹고요
신문질 밥상으로 펴면 밥상 차려 밥 먹는다고요
따뜻한 말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요
따뜻한 마음은 세상까지 따뜻하게 한다고요
어머니 또 한 말씀 가르쳐 주시는데요
-정일근, <신문지 밥상> 부분
시의 힘은 곧 언어의 힘이다. ‘신문지 깔고’ 밥을 먹을지 ‘밥상 차려’ 밥을 먹을지는 그것을 어떻게 명명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고가 언어를 지배할 때도 있지만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기도 한다. ‘따뜻한 말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따뜻한 마음은 세상까지 따뜻하게 한다’지 않는가.
지금은 영화나 게임 같은 이미지가 큰 힘을 발휘하는 시대다. 그러나 일상에서 쓰는 언어는 소통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하는 말 한 마디가 내 이웃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
박설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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