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횃불과 신의를 노래한 군의관

▲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와 벨기에의 인접지역인 플란다스에는 연합군과 독일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1915년 5월 캐나다군 포병장교 알렉시스 헬머 중위는 독일군의 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마침 군종장교가 출장 중이라 군의관 존 맥크레 중령(John A. McCrae)이 그날 저녁에 장례식을 집전하게 됐다. 장례식이 끝난 뒤 그는 시를 썼다. 죽은 전우가 피흘려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살아남은 이들이 신의로 완수해 달라는 유지를 생각하고 시로 표현했던 것이다.

‘플란다스 전장에서(In Flanders Fields)’

플란다스 전장에 양귀비꽃 피었네

줄 서있는 십자가들 사이에

우리가 누운 곳 알려주기 위함이네

하늘엔 종달새 힘차게 노래하며 날지만

저 밑에 총소리로 새소리 잘 들리지 않아

우리는 이제 운명을 달리한 자들

며칠 전까지 살아서 새벽을 느꼈고 석양을 보았고

사랑하고 사랑 받았지만

지금 우리는 플란다스 전장에 누웠네

적과의 싸움을 계속해주게

기력 없는 내 손에서 그대들에게

횃불을 넘기니 높이 들게나

그대가 죽은 우리와의 신의를 버리면

우리는 눈을 감을 수 없으리

플란다스 전장에 양귀비꽃 자라더라도

시를 지은 맥크레 중령도 전쟁이 끝나가던 1918년 전장에서 폐렴에 걸려 사망했다. 그가 죽은 뒤 1918년 시집 ‘플란다스 전장(In Flanders Fields)’이 발간됐으며, 시를 읽고 감명받은 조지아 대학 모니카 마이클 교수가 ‘그들을 기억하며(We Shall Remember)’란 답시를 지어 붉은 양귀비(Red Poppy)를 가슴에 달자고 제안했다.

 

3년 후 영국의 조지 호슨 총리 때 공식화돼 시와 꽃의 상징이 널리 퍼지게 됐다.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에서는 종전일 11월11일을 ‘회상의 날(Remembrance day), 포피데이(Poppy day)’로 정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가진다. 시를 읽고 또 읽다 보니 1983년 육군 제3사관학교에서 군의관 훈련을 받을 때 부르던 군가 ‘전선을 간다’가 귀에 울렸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자리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행군 도중 아픈 다리 이끌며 이 군가를 불러본 이라면, 고된 유격훈련 중 전우들과 이 군가를 목놓아 불러본 이라면 수십년이 지나도 가사와 곡조를 잊지 못할 것이다. 처연하지만 힘찬 멜로디, 슬프면서도 숭엄한 결의가 엿보이는 노랫말이 듣고 부르는 이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군가 작사자는 죽은 전우가 피흘려 지키고자 했던 자유와 민주주의를 살아남은 우리가 잊지 말고 완수해 달라는 유지를 생각하고 노랫말을 지었을 것이다. 전방에서 복무 중인 내 아들도 행군이나 훈련 중에 ‘전선을 간다’를 목청껏 부르고 있을 것이다. 목놓아 부르다 보면, 선배들이 목숨 바쳐 지킨 이 나라와 민주주의를 우리도 잘 지켜 후손에게 물려줄 책임이 있다는 것도 깨달을 것임을 나는 믿는다.

 

황건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