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 전장에서(In Flanders Fields)’
플란다스 전장에 양귀비꽃 피었네
줄 서있는 십자가들 사이에
우리가 누운 곳 알려주기 위함이네
하늘엔 종달새 힘차게 노래하며 날지만
저 밑에 총소리로 새소리 잘 들리지 않아
우리는 이제 운명을 달리한 자들
며칠 전까지 살아서 새벽을 느꼈고 석양을 보았고
사랑하고 사랑 받았지만
지금 우리는 플란다스 전장에 누웠네
적과의 싸움을 계속해주게
기력 없는 내 손에서 그대들에게
횃불을 넘기니 높이 들게나
그대가 죽은 우리와의 신의를 버리면
우리는 눈을 감을 수 없으리
플란다스 전장에 양귀비꽃 자라더라도
시를 지은 맥크레 중령도 전쟁이 끝나가던 1918년 전장에서 폐렴에 걸려 사망했다. 그가 죽은 뒤 1918년 시집 ‘플란다스 전장(In Flanders Fields)’이 발간됐으며, 시를 읽고 감명받은 조지아 대학 모니카 마이클 교수가 ‘그들을 기억하며(We Shall Remember)’란 답시를 지어 붉은 양귀비(Red Poppy)를 가슴에 달자고 제안했다.
3년 후 영국의 조지 호슨 총리 때 공식화돼 시와 꽃의 상징이 널리 퍼지게 됐다.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에서는 종전일 11월11일을 ‘회상의 날(Remembrance day), 포피데이(Poppy day)’로 정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가진다. 시를 읽고 또 읽다 보니 1983년 육군 제3사관학교에서 군의관 훈련을 받을 때 부르던 군가 ‘전선을 간다’가 귀에 울렸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자리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행군 도중 아픈 다리 이끌며 이 군가를 불러본 이라면, 고된 유격훈련 중 전우들과 이 군가를 목놓아 불러본 이라면 수십년이 지나도 가사와 곡조를 잊지 못할 것이다. 처연하지만 힘찬 멜로디, 슬프면서도 숭엄한 결의가 엿보이는 노랫말이 듣고 부르는 이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군가 작사자는 죽은 전우가 피흘려 지키고자 했던 자유와 민주주의를 살아남은 우리가 잊지 말고 완수해 달라는 유지를 생각하고 노랫말을 지었을 것이다. 전방에서 복무 중인 내 아들도 행군이나 훈련 중에 ‘전선을 간다’를 목청껏 부르고 있을 것이다. 목놓아 부르다 보면, 선배들이 목숨 바쳐 지킨 이 나라와 민주주의를 우리도 잘 지켜 후손에게 물려줄 책임이 있다는 것도 깨달을 것임을 나는 믿는다.
황건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