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실크로드다. 그 옛날 낙타 타고 하염없이 사막을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고속철로 반나절에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되어버린 그곳은 지금도 빠른 속도로 변모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실크로드의 상징도시인 둔황이다. 둔황 막고굴은 오랜 세월 숱한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우리에게는 혜초 선사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둔황 막고굴에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첨단시설을 갖춘 관람센터이다. 막고굴의 유적은 사실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다. 영국과 독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 중앙박물관에도 일부가 보존되고 있다. 일본의 오타니 원정대가 가져온 유물 중 일부가 조선총독부에 기증한 것이 지금껏 남아있는 것이 1천700여 점이다.
전 세계에 흩어진 둔황의 유물을 포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디지털 둔황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물을 볼 수 있는 곳이 막고굴 관람센터의 디지털 영상관이다. 막고굴이 형성된 과정을 영상으로 관람하고 원내 셔틀버스를 타고 막고굴로 이동하는 시스템이다. 관람은 철저하게 가이드를 따라다녀야 한다. 수백개의 굴 중에서 딱 6개만을 보여준다. 관람이 끝난 굴은 여지없이 자물쇠로 잠가둔다. 더 보고 싶으면 몇 번이고 다시 오라는 게다.
막고굴 바로 옆에는 ‘우견둔황’의 대규모의 공연장이 있다. 인상 시리즈를 연출한 철삼각중 왕차오거(王潮歌)의 작품이다. 이 공연은 정경체험극이다. 박물관이나 갤러리를 다니는 것처럼 관객들이 다니면서 공연을 체험하는 형식이다. 제일 싼 표가 300위엔쯤 하니 5만원이 넘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공연이 끝나면 전통 야시장으로 향한다.
서역이니 양꼬치의 크기는 동북지역의 열 배쯤 되는 큼직한 것이 중앙아시아에서 먹는 샤슬릭에 가깝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막고굴 벽화에서 막 나온듯한 무희의 상이 길 한가운데를 차지한다. 이 먼 곳까지 구경 왔으면 제대로 며칠 지내면서 샅샅이 보고 가라는 듯 볼거리 먹거리가 넘치는 곳이 되었다.
그렇게 즐기면서 둔황에 대한 기억을 여행 후에도 오랫동안 가지게 될 것이다. 40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에 대한 기억은 덤이다.
세계유산을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이다. 세상 어느 누가 보아도 보존할 당위성을 가질 정도의 유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세계유산이 있다. 경기도에는 수원 화성과 남한산성이 대표적이다.
화성은 수원시내에 있으니 근처에 사는 이는 일부러 가지 않아도 보고 다닐 테고, 남한산성도 등산 삼아 한두 번 들렀을 터이다. 우리는 이곳에 무슨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시설 정비가 필요한 부분도 있을테고, 콘텐츠도 더 보태져야 할 일이다.
필자가 둔황의 문화콘텐츠에서 주목한 것은 숱하게 축적된 둔황학 연구의 성과물이었고, 이를 집대성하는 디지털 둔황 프로젝트가 있었다는 점이다. 연구자료가 바탕이 되어 이야기와 공연이 만들어지는 콘텐츠의 순환구조가 단단히 버티고 있다.
문화유산의 원형성을 보존하면서 콘텐츠를 풍부하게 하는 일은 한두 달의 기획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 숙성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기억이 쌓여가는 구조를 기대한다. 은근과 끈기 하면 이웃나라 못지않으니 이 정도야 충분히 감당하리라.
김상헌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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