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긁어 부스럼은 고도의 꿍꿍이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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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냐 근로냐? 그건 의원 개인의 생각일까, 정부 여당의 기획된 첫걸음일까?

 

민주당 모 의원이 모든 법률에서 ‘근로’란 용어를 ‘일제의 유물’(납득이 안 되지만)이란 이유를 달아 ‘노동’으로 교체하는 12건의 법 개정안을 발의 한다고 한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근로자 대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한 후 추진되는 개정안이어서 ‘고도의 꿍꿍이’가 아닌가, 의심이 인다.

 

노동은 이데올로기적인 표현이라며 근로로 바꿔 이제 근로나 노동이나 같은 의미이지만 근로란 노동의 높임말쯤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이를 다시 바꾸자고 나섬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이 정부가 이데올로기, 그 색깔을 드러내며 이제 본격적인 행보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거다. 2012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던 적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근로는 ‘부지런히 일함’으로 돼 있다. 노동이 노동자의 능동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근로는 부지런함을 강조하고 있다지만 같은 ‘일’을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두 용어에 큰 차이는 없다. 일제 강점기에 시작된 ‘노동절’ 행사(5월1일)를 이승만 정권 때 3월10일(당시 대한노총 창립 기념일)로 날짜를, 1963년 박정희 정권 때 노동절을 ‘의도적’으로 ‘근로자의 날’로 명칭을 바꾸었다. 문민정부 시기인 1994년, 노동자들의 주장으로 노동절은 5월1일을 되찾았으나 명칭은 근로자의 날 그대로였다.

 

법률의 언어를 현재의 사용에 맞추는 것은 옳은 일이다.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대립 개념으로 스스로 ‘노동자’로 불리기를 원하는 것 같다. 노동조합이라고 하지 근로조합이라고 하진 않는다. 이 둘이 다른 의미라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나는 근로자를 좀 더 포괄적이라고 하는 의견에 찬성한다. 노동절은 사회주의적 뉘앙스가 강하지 않은가. 그러나 사실상은 같은 팩트를 놓고 다른 시각으로 보는 차이가 아닌가 싶다.

 

청소부를 환경미화원, 때밀이를 피부세척사, 편지 배달부를 집배원 등으로 직업 명칭을 순화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정치적 의도로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근로와 노동을 놓고 인터넷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어졌던 적도 있었는데 이를 다시 촉발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우리나라 노동관계법령을 살펴보면, 이 두 단어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법률 용어에서도 ‘노동’을 지우려는 흐름이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단결권ㆍ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은 오랜 기간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노동 3권’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199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보충의견으로 ‘근로 3권’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헌재도 1990년 제3자 개입금지조항 위헌사건 결정까지는 ‘노동 3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그 이후부턴 근로 3권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이 정부는 시대에 뒤처진(가장 낡고 후진적인)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를 어떻게 개혁해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다시 활성화ㆍ성장시킬 것인가엔 손을 놓고 있으면서 인기 영합적인 용어에나 매달린다고 ‘소통’이 아니라 ‘쇼통 정부’라고 비난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극장 매표소는 관람객 입장에서는 ‘표 사는 곳’인데 극장 측에서는 ‘표 파는 곳’이다. 관점에 따라 달리 표현할 뿐인데 여기에 사상을 입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송수남 前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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