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장이 돼야 할 일선 학교에 40년 넘게 ‘친일파’ 동상이 버젓이 버티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14일 인천시 중구에 있는 A중학교.
이 학교 본관 건물 앞에는 일제시대 친일파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윤치호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동상은 지난 1976년 10월에 건립됐다.
윤치호는 1906년 이 학교의 모태인 한영서원을 개성에 설립했다가 인천으로 옮겨 학교를 세운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에 모두 선정됐을 정도로 대표적 친일파로 꼽힌다.
그는 일본, 중국, 미국에서 유학한 한국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이었다.
한때는 독립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펼쳤다.
1910년 일제의 조선 강점 이후에는 일본으로부터 남작 작위와 공채 2만5천 원(현재가치, 약 10억 원)을 받기도 했다.
3ㆍ1 운동 당시에는 국민대표로 서명을 권유받았으나 거절하면서 “만약 약자가 강자에 대해 무턱대고 대든다면 강자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약자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된다”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윤치호의 이런 행동 뒤에는 일본이 세계를 제패할 것이란 계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학도병들에게 친일 관련 강의도 했으며 징병을 권유하는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또 YMCA와 감리교의 ‘친일화’ 작업도 주도했으며 광복이 되기 직전까지 일본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윤치호 동상 아래에 새겨진 석판에는 그의 일생을 미화해 놓은 글로 가득 차있다.
해당 글에는 ‘민족의 좌표와 역사의 새 진로를 밝힌 탁월한 개척자’와 ‘선생의 뛰어난 애국정신과 고매한 인격은 우리 후학인의 거울이요 자랑’이란 문구도 포함돼 있다.
같은 사학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연수구 B고등학교도 윤치호의 친일행각을 미화해 놓은 사진과 글로 학교 본관 입구를 장식해 놨다.
그의 일생을 소개한 게시판에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 체결로 정계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종교활동과 교육사업에 주력했다’고 돼 있다.
친일행각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조차 없다.
게시판 옆에는 이 학교 교시인 ‘사람이 먼저 되라’는 글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2002년 708명의 친일파 명단 발표 이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윤치호 동상을 철거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학교 측의 반대로 이뤄지진 못했다.
친일파 동상을 철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 학교 관계자는 “윤치호 선생에 대한 관점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으며 교육운동 쪽에선 굉장히 헌신하셨던 분이었다”며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돼 있긴 하지만, 학교 입장에선 이 분이 설립자이고 교육계에 기여하셨던 것을 높이 평가해 동상을 철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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