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피로사회, 여름 휴가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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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더위는 그 도를 더하고 있어 벌써 여름휴가를 떠난 사람들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2017년 여름휴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2%가 7월 말에서 8월 초에 휴가를 갈 예정이라고 한다. 

경기가 좋지 않아 삶이 팍팍해져도 어김없이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 돌아온 것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들과 함께 일과 가정에서 쌓였던 스트레스와 피로를 푼다는 점에서도, 2017년 남은 후반기를 힘차게 살아 갈 에너지를 재충전한다는 점에서도 휴가는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여름휴가 모습은 어떤가? 계획을 세워 휴가가 시작되자마자 급히 달려가 먹고 마시고 놀다 보면 정해진 휴가시간이 다 지나고 파김치가 돼 돌아와 다음 날 출근한다. 힐링이나 충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전이 돼 더 피곤해지는 ‘휴가 후유증’을 겪는 것이다.

 

한 일간지가 주관해 20~50대 직장인 1천여 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휴가후유증을 경험한 비율이 무려 70.9%에 이른다. 그래서인지 이번 여름휴가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설문에 응한 직장인의 57.3%가 선택한 ‘휴식(休息)’이다. 재미나 보람보다 심신회복, 그냥 푹 쉬고 싶다는 것이다. 지친 심신이 보내는 요구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도 하다.

 

미국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박사는 2001년 뇌영상 장비로 휴식하거나 잠자는 등 뇌에 아무런 정보가 입력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default mode network)를 발견했다. 컴퓨터를 리셋하면 초기설정(default)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평소에 뇌가 인지활동을 하고 있을 때는 서로 연결되지 않던 뇌의 각 부분이 연결되어 창의력과 통찰력이 더 발휘된다는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뉴턴은 사과나무 밑에서 쉬다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한다. 현대인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에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느라 정작 문제나 고민 해결에 필요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재독 철학자 현병철 교수는 저서 피로사회(2010년) 첫 문장에서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고 말한다.

현대를 피로사회이자 자기착취사회로 규정하며 고유질병인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 자기 자신과 쉼 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현대 인간을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일이든 휴가든 쉬지 못하는 불 안병에 걸려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여느 국가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여 단기간에 초고속 성장을 한 만큼 만성 피로감도 더 쌓여 있다. 점진적인 성장을 이룩한 영국, 미국, 일본에 비해 성장기간이 짧은 만큼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살아온 삶의 차이 또한 크다. 그 차이만큼 공감대 부족으로 세대 갈등도 늘어나 피로가 쌓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인터넷에 떠도는 두 교수의 소위 헬조선에 대한 반박 글과 재반박 글은 그 갈등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요즘 집이나 근처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하는 감금휴가가 새로운 휴가 유형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올 여름휴가는 쌓인 피로를 씻는 심신회복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

 

공정률 30%의 신고리 5, 6호기 건설공사를 중단하는 등 새정부 탈원전 정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찬반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인수기간도 없이 쉬지 않고 달려 온 새정부도 성과를 위해 서두르기보다는 더 큰 통찰력을 위해서라도 잠시 쉬면서 되돌아보는 여름휴가가 필요하다.

 

이정호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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