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한일 기업간 협력의 진전과 한일 우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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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1일 일본 도시바는 자회사인 도시바 메모리를 매각하기 위한 우선협상 대상자로 SK하이닉스가 참여한 한·미·일 기업 연합컨소시엄을 선정했다. 도시바 메모리는 세계 제2위의 플래시메모리 생산업체로서 SK하이닉스는 이번 컨소시엄 참가를 통해 도시바와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세계 플래시메모리 시장에서 약진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한다. 한일 양국 기업 간 협력이 더욱 진화되는 형태를 보는 것 같아 인수협상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바란다.

 

한일 양국의 기업 간 협력은 사실상 정부주도하에서 일본기업으로부터의 일방적인 기술이전을 촉진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까지는 매년 한일무역회담을 계기로 100건이 넘는 기술이전희망 리스트를 일본 측에 제시하고 일본정부의 협력 조치를 압박했다. 

일본 측 답은 공공기관 보유기술은 가능한 협조를 제공할 것이나 민간기업 보유기술은 정부가 개입할 수 없으니 양국기업이 상업베이스에서 협의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열띤 논의가 매년 무역회담에서 반복되었으나 1990년대 들어 우리 측은 그러한 기술이전 요청방식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기술이전 리스트 제시를 중단했다.

 

대신에 우리 정부는 1980년대 중반 시작된 중소기업 기능인력의 일본연수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우리 중소기업의 기능·기술직원들을 일본기업에서 연수시키는 프로그램에 합의하고, 90년대 들어서는 매년 100명 이상을 파견하여 일본의 생산현장에서 선진기술을 습득케 하는데 매우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2000년대 들어서서도 한일 정부 간 협력사업 등을 통해 우리 기업들이 일본기업의 퇴직기술자를 초빙하여 생산현장에서 기술이나 노하우를 자문 받고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이 계속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우리 기업과 일본기업의 기술격차는 줄어들고 우리 기업들의 생산 제품과 용역들이 일본기업에 공급되는 사례가 이제는 흔하게 됐다. 이와 함께 한일 기업 간 협력은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됐다. 2007년 일본 스미토모 상사와 한국 광물자원공사가 협력하여 마다가스카르의 코발트 광산 개발프로젝트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한일 기업의 협업에 의한 제3국 시장 진출이 유망한 협력분야로 주목되기에 이르렀다. 2016년 말 현재까지 제3국에서 한국과 일본기업이 공동으로 진출한 자원개발 및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는 87건에 이른다.

 

OECD는 2000년에서 2030년까지 전 세계 인프라 시장의 누적 투자금이 총 7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세계 인프라 시장의 잠재수요는 막대하다. 프로젝트 개발과 파이낸싱에 강한 일본기업과 EPC(엔지니어링·조달·건설)에 강한 한국기업이 협업하면 세계 인프라 시장에서 강자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중국기업의 저가공세를 견제하고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주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정부가 공조하여 적극적인 마케팅 전개와 파이낸싱 해결 등 측면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우호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과거 한일 간 기술협력의 성과가 한일 우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듯이 한일 우호관계 증진은 SK하이닉스의 도시바메모리 인수 참여 같은 또 다른 차원의 한일 기업 간 협력도 촉진할 것이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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