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시행이후 30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대중화는커녕 오히려 외면당하는 현실이 오늘날 국악의 현주소다. 대중화라는 기치는 높았으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묵은 과제, 국악의 대중화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로서 ‘국악쿼터제’를 제안한다.
한국 영화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제도로 ‘스크린쿼터제’가 있다. 극장 상영일수의 일정기준, 일수 이상의 한국영화를 상영하도록 강제하는 장치다. 영화진흥법상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에 의해 제도화되어 있다. 2017년 현재 연간 73일(1년의 20%) 이상 한국영화 상영을 의무상영하도록 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처럼 최소한의 장치가 있어 그나마도 한국영화계는 외국영화의 무차별적인 시장잠식을 견제할 수 있다.
이제는 ‘국악쿼터제’를 도입해야 할 때다. 국악이 우리의 삶 속에서 생활음악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구호로서 주장하는 것은 한시적인 인식개선 효과는 있으나 지속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와 초고속 근대화를 거치면서 단절된 국악을 다시 이 시대에 주인으로 되돌리기 위한 방법은 있다. 하나는 제도교육에 국악비중을 높여 실제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상파 방송에서 국악을 많이 내보내는 것이다.
다행히 학교교육에서 국악을 성실하게 배우고 정상화 시키려는 노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일상에서 접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일 것이다. 일상에서 국악을 접하는 방법은 바로 방송매체를 통하는 것이다. 많이 듣고, 보고, 익숙해져야 관심이 가고 대중화가 이루어질 것 아닌가.
프랑스는 1995년 모든 라디오 방송 음악의 40%를 프랑스 샹송으로 편성하는 쿼터제를 실시한 결과 자국민에 문화자부심이 높아지고 세계 팝시장에서도 샹송의 산업화가 빠르게 이루어 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악의 편성비율은 매우 미약하며 그나마도 자정을 넘기거나 시청률이 가장 낮은 시간대에 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결과 전통음악 시장의 생산과 소비시장은 위축되고, 이로 인한 음반 및 공연 제작과 유통시스템 등 관련 산업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는 대중음악 쿼터제가 있다. 대중음악에 보장된 쿼터제는 연간 전체 방영시간의 50~80%로 ‘스크린쿼터제’에 비할 바 아니다. 우리나라 방송법은 제71조는 ‘전체 프로그램 중 국내에서 제작된 방송프로그램을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한 비율 이상 편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국내 대중가요의 방송분량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어 자체 경쟁력 강화로 이어짐으로써 현재의 대중가요 발전에 상당부분 기여했다. 하지만 자국문화와 콘텐츠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에 정작 국악은 빠져 있다. 전체 음악의 20%(10곡 중 2곡)만이라도 의무적으로 국악에 할당한다면 국악 대중화와 경쟁력 강화에 어떠한 정책보다 큰 기여가 될 것이다.
‘국악쿼터제’는 10여 년 전 노무현정부 때 전통예술 활성화 정책으로 이미 내놓았으며, 관계기관 협의와 공청회도 모두 거쳤다.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정부는 국악이 우리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인식부터 출발하길 바란다. ‘국악쿼터제’야 말로 우리의 음악적 고유성 즉 전통을 회복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음악 산업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본다.
최상화 경기도립국악단 예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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