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경기도에서 ‘미완의 제국’ 고려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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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 고려 건국 1100주년이 되는 해란다. 우리나라 왕조의 역사 중에서 일반인들이 비교적 적게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바로 고려로 생각된다. 이것은 아마도 왕조의 수도가 남한 지역에 있지 않기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에 고려 수도인 개성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때만 해도 남한 지역인 연천이나 강화에 있는 고려시대의 중요한 왕실 관련 유적들은 제외되었던 것에서도 그 관심도를 알 수가 있다. 아마도 내년이 고려의 역사를 재조명하게 되는 대단히 중요한 해가 되어야 할 듯싶다. 특히 경기도로서는 개성이 바로 경기도에 속한다는 점에서 북한지역이지만 그 의의를 새로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고려를 되새겨야 하는 것은 단지 경기도민 만이 아닐 것이다. 고려는 오늘날 외국인이 한국을 부를 때의 코리아라는 말의 그 어원이다. 오늘날을 글로벌시대라고 하지만 이 때야 말로 한반도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중국에서 탈피하기 위한 원대한 꿈과 노력이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바로 황제라고 칭하기도 하였고 중국과 맞대응하였던 고구려를 이어받으려는 정신이 드높았던 시대였던 것이고 그러한 연유에서인지 오늘날 현전하고 있는 역사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편찬된 시기이고 또한 단군신화가 널리 소개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가장 창조적인 문화유산인 금속활자나 대장경 등을 만들어내었다. 고려불화를 보면 그 종교적 예술적으로 강한 정신이 꼿꼿이 살아 있고 아마도 당대 세계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성을 보여준다. 또 한편으로 일제시기의 유행가이었던 ‘황성옛터’의 노래의 애수의 노래 가락에서 느끼듯이 고려는 바로 일제치하의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 들었던 것이다.

 

몇 해 전에 남북으로 공동으로 발굴한 만월대를 방문하였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작은 개울 위에 놓인 다리를 넘어가서 바로 마주친 33단의 돌계단을 오르면서 서서히 나타나는 누운 임산부의 모습을 한 송악산과 그 아래에 펼쳐지는 옛날 궁궐터는 흔히 볼 수 없는 장관이었고 황제의 궁궐이라는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약간을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사신들이 고려가 높다고 느끼도록 만들었을 것인데 바로 세계의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의 궁전이었던 페르세폴리스의 입구 계단을 오르는 사신들과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역사기록에도 보이듯이 중국 사신들이 궁궐이 너무 호화롭다는 등의 기분 나쁜 표현을 하였을 지도 모른다.

 

조선의 역사의 중심터가 오늘날의 서울이었다면 고려의 정신은 바로 인천에 속하는 강화를 포함하여 오늘날 경기도에 퍼져있다. 강화는 바로 백 년간 고려왕도였고 대장경이 조판된 곳이기도 한 것을 잘 알려져 있다.

한편으로, 연천의 경순왕릉도 신라왕의 무덤이지만 바로 신라의 멸망과 고려의 건국의 적나나하게 운명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며 바로 이웃한 숭의전 역시 고려개국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남 이성 산성 아래에 나타나는 도시 유적은 바로 오늘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왕씨 성의 유래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용인 수지에 있는 골짜기 속의 서봉사라는 절에서도 고려 왕실의 힘을 엿볼 수가 있다.

왕실에서 출가한 현오국사비가 남아 있고 고려불교의 한 현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안산 대부도 등과 같은 경기만 해안을 따라 남아 있는 항몽 삼별초의 유적 등등, 경기도의 곳곳에 고려의 정신이 묻혀 있다. 그래서 경기도는 고려 정신의 계승자라고 하여도 당연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 같다.

 

고려 1100년을 맞이하여 남북통일 등의 새로운 국운을 일으킬 문화소재로서 경기도가 고려의 정신과 그 문화계승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배기동 한양대학교 석학교수·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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