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불법 헌법’의 과거 청산 과제와 이행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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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자 이재승은 유신헌법을 “헌법의 형식을 취했으되 그 본질은 범죄이고 불법”인 “헌법적 불법(verfassungsrechtliche Unrecht)”이라고 규정했다. 5·16군사쿠데타 이후의 1962년 개정헌법 역시 4·19혁명의 민주적 성과를 담은 1960년 개정헌법을 부정하는 개악이었다. 1987년에 개정한 현행 헌법은 민주화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불법 헌법’의 잔재를 걸러내지 못하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헌법 제33조는 법률로써 공무원인 근로자의 노동3권(제2항) 또는 주요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교섭권(제3항)을 법률로써 부인할 수 있도록 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하도록 입법자에게 허용하고 있다. 제2항은 1962년 개정헌법, 제3항은 유신헌법의 산물이다. 이것은 관련 법률을 고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관을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유신헌법의 산물이다. 1960년 개정헌법에서는 대법관은 물론 대법원장까지 ‘법관의 자격 있는 사람들로 조직하는 선거인단’의 선거로 선출하고 대통령은 그것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유신독재자는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대법원장 1인만을 통제하면 사법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헌법 제29조 제2항은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국가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1971년 대법원은 국가배상법에 있었던 이 조항이 군인 등에 대해서만 국가배상청구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므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유신헌법은 위헌 시비를 피하기 위해 이 조항을 헌법에 규정했다. 법률이 정하는 보상이 충분하지 않은데도 헌법은 군인 등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헌법 제27조 제2항은 군인 또는 군무원이 아닌 국민이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후 개정한 1962년 개정헌법에서 신설한 규정이다. 유신헌법은 한술 더 떠 대통령의 긴급조치에 따라 군사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그 범위를 넓히기까지 했다. 현행 군사법원법은 사법권독립을 훼손하고 재판청구권을 침해하고 있다. 이 역시 관련 법률의 개정으로 해소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헌법 제47조 제2항은 국회 정기회의 회기일수를 100일로, 임시회의 회기일수를 30일로 제한하고 있다. 국회의 회기일수는 국회가 자율적으로 정해야 할 사항일 뿐 아니라 회기일수 제한은 국민대표기관으로서 언제라도 회의를 열 수 있어야 하는 의회민주주의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국회가 길게 열리는 것을 탐탁하지 않게 여겼던 쿠데타세력이 1962년 개정헌법에 둔 조항이다.

 

헌법이 이렇다면, 오랜 독재 정권 아래에서 행한 ‘불법적인 것’이 법률 또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그리고 행정관행 등에 걸쳐 여전히 허다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적폐청산’이 쉽지 않은 길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우선 행정관행 또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하되, 동시에 여·야 합의 아래 법률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추진하면서 헌법규범을 회복할 일이다.

 

헌법조문을 고치는 개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헌법 또는 법치의 이름으로 행한 불법적인 잔재를 청산하는 일이다. 인적, 관행적, 제도적 청산을 선행해야 한다. 성문헌법의 개정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촛불국민’의 뜻과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직접민주제와 지방분권을 보장하는 헌법 개정을 실현할 수 있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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