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자연의 미술 - 야투(野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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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여름 나는 자연 속에서 작업하는 작가들과 만났다. 지난 36년간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국내외 자연미술운동을 이끌고 있는 야투 그룹의 멤버들이다. 나는 이들과 함께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새로운 형식의 미술을 실험해왔다.

 

자연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연과 인간은 서로 인격적인 소통은 할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을 관리하는 유일한 존재이고 자연은 때로 아무런 이해관계나 선악의 판단 없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연과의 교감을 이야기 하지만 존재의 성격이 다른 두 세계가 소통한다는 것은 다분히 관념적 발상이다. 자연으로부터 예술 작업의 모티브를 얻거나 표현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인간 중심의 접근방식이다.

 

야투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접선 가능한 지점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미술을 통한 자연과 인간의 실질적인 만남을 주선한다. 이러한 접점의 발생은 자연의 생명력이 작업의 중심이 되는 자연의 미술일 때 가능하다.

 

나는 자연 속에서 나의 생각을 실현하기 보다는 자연의 다양한 양상에 반응하는 작업을 선호한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불확실한 지식과 욕망을 내려놓고 원초적 몸 감각이 작동하여 자연과 조응해야만 자연미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연에 다가가서 만지고 연결하고 붙이는 등의 최소 행위로 이루어지는 야투는 자연을 재료 혹은 작품 설치 장소로 사용하지 않고 자연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살아서 작용하는 자연을 드러낸다.

 

야투작업은 시각적인 결과물을 중시하기보다는 자연과 교감하는 과정을 즐긴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세계 구축에 매진한다면 야투작가들은 자기를 비워내는 수행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미술을 드러내기 보다는 자연과 하나 되기를 시도한다. 이러한 야투작가들의 행위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됨으로써 기존 미술 안으로 들어온다.

 

자연미술가들은 왜 자연과의 만남을 시도하는가? 이는 자연으로부터 독립되어있으나 자연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함일 것이다. 자연과의 일체감을 추구하는 야투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있는 인간이 자연과 만나기 위해 찾아낸 ‘소통 코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야투가 현실 도피적 자연탐닉에 머무는 것을 경계한다. 자연에 반응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인식하면서 자기 숨결이 살아있는 작업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야투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항시 존재하던 교감의 방식에 붙여진 이름이며, 기존 미술의 맥락에서 이탈하여 자연과 대화하는 독특한 체험이다. 비록 나와 자연 사이에 잠시 존재하다 사라지지만 자연의 미술-야투는 마음속에서 더욱 생생해진다. 나는 야투가 인간의 의식을 해방시켜 창의적 상상력을 자극하길 바라며,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의 방식을 제안하는 미술이 되기 바란다.

 

전원길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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