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등장하는 문화예술 분야 정책 또한 경색된 남북관계 재정립을 위한 수단으로 문화교류를 활성화한다거나,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여 문화산업의 진흥을 꾀하겠다는 등 미사여구뿐이다. 딱 한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만이 문화예술인의 안정적인 창작활동 보장을 위한 지원제도 도입과 최근 논란이 된 문화예술 지원사업의 공정성 강화를 위한 정책을 구체적으로 명시했을 뿐이다.
이렇듯 대통령 후보들의 국가 운영 청사진에서 문화와 예술이 홀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 그리고 위험과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안전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국가의 기본적인 기능과 역할이라는 관점이 전제된 결과가 아닐까? 그런 연유 때문인지 선거가 다가올수록 일자리 창출과 청년 실업 해소,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노인 복지, 신혼부부 주거지원 확대,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방안 등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사안들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더불어 국민의 생명 보호권을 앞세운 한반도 사드 배치와 북한 주적 논쟁이 유력 후보자들의 국가관을 판단하는 바로미터로 주목받고 있다.
여느 선거와 마찬가지로,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정책 검증보다 네거티브 공세가 거세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후보자들에게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정책을 천명하라는 주문은 공허한 메아리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삶이 우선하는 국가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상하는 현 단계에서 문화와 예술이 왜 긴요한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한때, 박근혜 정부도 국민의 행복한 삶을 구현하기 위한 정책수단으로 문화와 예술에 주목한 바 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퇴색하긴 했지만, 한동안 ‘문화융성’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그야말로 융성하게 회자되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렇다면, 국민행복 실현과 문화예술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Maslow)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 욕구의 최상위 단계에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위치하며 지속적인 자기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이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정한 삶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UN 세계행복보고서(2016)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OECD 35개 회원국 중 29위로 최하위권이다. 또한 통계청이 지난 3월 첫 발표한 ‘삶의 질 지수’ 조사에서도 과거 10년간 1인당 GDP가 34.6% 증가하는 동안 국민 삶의 질은 11.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의 경제발전 속도보다 국민의 행복 만족도가 더디게 향상되었다는 방증이다.
대통령 후보 모두가 국정운영의 핵심과제로 국민의 삶을 우선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는 이때, 새 정부 국정운영의 새로운 모멘텀으로 문화예술에 주목하길, 그리고 누가 당선되더라도 문화예술을 기본권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허은광 인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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