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가 저 유명한 러시아의 대시인 푸시킨의 시라는 것을 안 것은 훨씬 뒤였다. 그러자 궁금증이 고개를 쳐들었다. 이발소 주인은 저렇게 유명한 시를 과연 제대로 알고서 걸었던 걸까, 하는 게 그것이었다. 그리고 왜 그 많은 시 가운데서 하필이면 푸시킨의 시였을까, 하는 것도 의문이었다.
어릴 적 만났던 그 읍내 이발소 주인은 학교라곤 초등학교만 간신히 나왔다고 들었는데, 학력과는 어울리지 않게 베레모에다 금테 안경을 쓰고 있는데다가 세상물정을 훤하게 꿰뚫고 있었을 뿐 아니라 말솜씨까지 탁월해서 동네에서는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그 이발소에는 푸시킨의 시만 걸려 있는 건 아니었다. 시와 함께 그림도 한 점 나란히 걸려 있었다. 초가집 너른 마당에는 어미닭이 병아리들을 데리고 한가롭게 노닐고 울타리 쪽에서는 개가 졸고 있는 풍경화였다. 계절은 마침 가을이어서 초가지붕에는 큼지막한 박이 몇 덩이 얹혀 있고 마당에는 고추를 널은 멍석도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림 오른쪽 구석에는 그린이의 이름까지 적혀 있던 기억이 난다.
문화니 예술이니 하는 어휘조차 듣기 어려웠던 가난한 시절에 만났던 그 시와 그림이 이 나이까지 잊히지 않는 이유는 어디 있는 걸까. 그리고 눈이 부시다 못해 감기기까지 하는 이 환한 세상에서 저 케케묵은 이발소 시와 그림이 그리워지는 건 또 어떤 이유에서일까.
아, 이제야 알 것 같다. 슬프고, 절망적이며, 우울하고, 서러운 현재를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며, 서러워하지도 말라는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표현 속에는 놀라우리만치 강한 ‘힘’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 농가의 그림 역시 평화와 풍요를 기원하는 가난한 서민들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걸핏하면 외세의 침략을 받아 피난길에 올라야 했던 뼈아픈 역사의 골짜기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마을에서 풍요를 일구며 살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망에서 그런 그림이 걸린 건 아니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넘쳐나는 물질문명과 함께 홍수처럼 밀려드는 문화예술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다양한 제작물과, 거기에 가세한 세계 각국들의 문화예술이 봇물 터지듯이 밀려들어 오고 있다.
더욱이 고도로 발달된 네트워크를 통한 네티즌들의 직접적인 문화예술 활동의 참여까지 더해져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는 작금의 현실은 오히려 지난날의 단순함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여기에 현대예술이란 거인의 뒤에 숨겨진 오만과 불확실한 표현은 예술의 기본정신을 의심하게 하기도 한다.
문학에서는 황순원의 <소나기>, 그림에서는 이중섭의 저 천진난만한 그림들이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들에게 삶의 위안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를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들 작품은 간결한 문장과 선만으로도 얼마든지 고도의 미학을 보여줄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런 것이 바로 문학의 본질이요, 예술의 본향이 아닌가 싶다. “구름 사이로 잠깐 햇살이 비추듯 인생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순간은 창작의 순간”이라고 한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의 말은 두고두고 음미해 볼 만하다.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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