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도로 교통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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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보운전은 아니다. 운전면허가 34년이나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도로에 나서면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는 두 가지 이유이다. 내가 길을 잘 모르거나 또는 운전자끼리 서로 다른 규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려가 없거나 운전의 원칙이 서로 상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움도 벌어진다. 언젠가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다른 차와 시비가 붙었다. 자동차로 투우사처럼 내차 앞으로 달려들어서 크게 당황한 적이 있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운전자끼리의 사소한 사인(sign)의 차이가 평생 잊히지 않는 사건이 되어 버린 셈이다.

 

미국에서 운전을 처음 배운 나에게는 한국에서 운전을 시작할 때 운전의 관습이 달라서 크게 고전한 적이 있었다. 일주일에 24시간 이상을 운전대 뒤편에 앉아 있는 나는 길에 나서면 아직도 도로교통문화에 대해서 때때로 ‘왜 우리는 길에서 이렇게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나?’라는 생각이 든다.

 

도로 교통문화의 기본적인 문화 원리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다. 그러한 배려문화에서 자동차의 속도를 입히면 우리가 운전할 때 지켜야 하는 두 가지의 원리가 탄생하게 된다. 하나는 ‘도로에서는 남처럼 행동하라’. 전투기는 속도가 빠르지만 편대비행을 해도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은 같은 속도로 가는 것이다. 속도위반? 속도위반딱지가 목숨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과속으로 달리는 차와 무한정같이 다니라는 뜻은 아니다. 

다른 차보다도 빨리 가야 하거나 또는 다른 차와 밸런스를 못 맞추는 경우는 바로 두 번째 원칙을 참조하면 된다. 두 번째의 원칙은 ‘다른 차의 주행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동차의 사고는 두 차의 속도가 달라서 생기는 일인데 빨리 가야 할 차는 일찍 보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기러기 떼의 운행원리와 같은 이 두 가지 원리는 결국 선진교통규칙의 바탕이 되는 문화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원리를 지키고 싶어도 안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우리의 교통체계이다. 도로는 직진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지만 분명직진차선인데 가다가 보면 좌회전해야만 할 때가 있다. 도로의 선형이 장기판의 ‘차(車)’의 운행원리보다도 못한 셈이다. 갑자기 나타나는 좌회전 표시에 초보는 당황하게 마련이고 도로에서 심한 구박을 받게 되어 하루를 잡치게 된다. 

그리고 고속도로 상에 보이는 차종별 운행차로이다. 이것은 자동차의 속성 중에서 등속도유지의 원리가 결여된 규칙이다. 빨리 가는 차 그리고 빨리 갈 수 있는 차들은 같이 다니게 하는 것이 안전에 최우선적인 원리일 텐데 속도가 다른 차들이 뒤섞여 다니니 계속해서 차선을 바꾸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고 차선을 많이 바꾸게 되면 그만큼 사고의 위험도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좌측통행인지 우측통행인지를 분간할 수 없게 다니고 있다. 추월을 할 때는 좌측차선으로 이동하여 지나가야 맞지만, 좌측차선에서 추월하게 되는 경우가 엄청 흔하다. 시내에서는 주정차된 차들 때문에 하위 차선 운행이 불가할 때가 있지만 고속도로상에서도 일차선에서 이태백이 걸음걸이로 가는 차들을 보면 그 털 난 심장을 알 수가 없다. 이런 차들 때문에 우측차선에서 추월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사실 도로 주행의 원리를 크게 왜곡하는 방식이어서 사고위험도를 크게 높이게 된다.

 

자동차가 천만대를 넘어선 최선진국이지만 내 눈에는 도로 윤리가 아직도 멀었다. 왜 운전시험에는 도로문화와 윤리과목이 없는지? 가장 단순하여야 할 교통체계에서 신호등이 왜 그렇게 다양한지… 속설에 한국에서 운전하게 되면 머리가 좋아진단다. 천년을 맞이한 경기도부터 시작하면 안 되나?

 

배기동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아태지역 국제박물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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