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독점의 개헌 논의에서 벗어나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개헌을 시도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다. 그러나 국민의 직접 결정이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할 수는 있어도 헌법의 핵심인 인간의 존엄을 보장한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사상의 자유, 성소수자의 인권, 양심적 병역거부권, 사형제도 같은 인권 사안을 여론의 향방에 따라 결정한다면, 인권적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공직자는 물론 시민의 인권 감성과 의식 그리고 실천이 중요하다. 국제적인 보편적 인권의 기준을 국내에 적용하기 위해 설립한 기구가 국가인권위원회다. 인권 실태와 침해를 조사하고, 인권 정책과 침해구제 방안을 권고하며, 인권교육을 통해 인권의식을 증진하는 구실을 한다. 지방정부 또한 인권위원회를 설치하여 인권친화적 행정과 시민의 인권의식 증진을 위해 애쓰고 있다.
경기도에도 수원시, 광명시, 성남시, 고양시, 오산시에 지방정부인권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경기도 차원에서도 ‘경기도 인권위원회’가 작년 6월21일 출범했다. 조례를 제정한지 3년이나 지난 후이긴 했지만, 다른 지방정부의 경험을 본받기도 하고 반면교사 삼기도 하면, 이제라도 경기도만의 인권 전망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인권위원회가 임무를 잘 수행하려면 첫째, 보편적 인권에 기반을 두고 모든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복무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고, 둘째, 조례 또는 실무 관행에 따라 도 행정기구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으며, 셋째, 인권 침해 사안에 대해 적정하게 조사하고 정책을 권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넷째, 그것은 적정한 인적 및 재정적 자원을 뒷받침할 때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재정 및 권한에서 ‘2할 또는 3할 자치’다. 지방정부의 인권행정이 자칫 ‘중앙정부 인권 수준의 2할 또는 3할’이 되기 십상이다. 이것을 핑계 삼아 지방정부의 인권 보장에는 한계가 있다고 체념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역발상이 필요하다. 중앙정부보다 더 인권친화적인 정책을 시도하고, 시민의 지지를 얻어내며, 그것을 바탕으로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토대를 쌓는 것이다.
지방정부에는 인권위원회 외에도 법률 등에 근거를 두고 인권 관련 활동을 하는 각종 위원회가 있다. 인권위원회는 이러한 위원회들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해야 차별 없는 인권 보장을 구현할 수 있다. 또한 경기도는 광역정부이기 때문에 경기도내 기초정부와 인권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기초정부보다 우위에 서는 자치구조가 아니라 대등하게 협력하는 민주적 자치·협치 구조를 조성해야 한다.
경기도가 인권교육 및 인권강사양성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경우 기초정부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그 결과물을 기초정부와 공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중앙-지방’ 정부관계의 복제가 아닌 새로운 ‘광역-기초’ 정부관계의 터 잡기다. 인권과 분권 그리고 민주주의를 연결하는 민주공화국 헌법 개정의 조용한 시작이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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