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21일 촛불집회에서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 헌법재판소의 조기 탄핵 인용,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의 사퇴 등을 외쳤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국회의원들은 박근혜체제의 헌법파괴를 방조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대통령제 아래에서도 국회의 입법권은 국정 운영의 핵심이다. 그런데 국회는 자본 통제 입법을 게을리 함으로써 재벌이 노동자를 탄압하고 세습과 사면 등의 이권을 챙기는 것을 막지 못했다.
교육부장관이 맘대로 국정교과서를 지정할 수 있도록 방관함으로써 교육 농단을 방치했다. 표현의 자유를 농락하는 블랙리스트를 예방하지도 적정하게 대처하지도 못했다. 국정조사에 증인을 불러내지도 못했고, 골고루 얼굴을 내밀고자 시간에 쫓기기만 한 무능한 국회였다.
국회의원들은 헌법파괴의 피해자로서 모욕당한 것조차 모른다. 정부가 사드 배치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독단으로 처리했는데도, 국회는 헌법이 부여한 동의권을 써먹지도 못했다. 조약 체결은 대통령과 국회의 공동결정 사항이며, 합의의 파기와 재협상도 가능한데도 묵묵부답이다. 장관들에게 호통치고 공천권을 휘두르는 권력 맛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참담한 삶은 공직자들의 안중에 없다. ‘도대체 이게 나라냐’는 국민의 분노가 하늘에 닿았는데도, 정부를 비판하고 비리를 고발하며 국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공무원은 없다. 교사를 포함하여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자유와 노동3권을 보장해야 관료제의 내부견제 장치가 만들어진다.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군대 등 정권의 이해관계와 조직이기주의에 따라 방해받았던 개혁의 과제를 수행할 때다.
재벌 총수라도 구속영장 앞에서 평등하게 함과 아울러 ‘국민경제’ 관점에서 재벌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헌법 제126조)할 수 있는 법제를 마련해야 할 때다. 지금 국회의 헌법적 구실은 이렇게 산적한 입법 과제를 수행하는 일이다. 헌법기관의 권한은 주권자가 명령한 의무다. 개헌보다 제 할 일 하는 입법 책무가 먼저다.
국회 개헌특위 활동은 광장에서 주권자가 써가고 있는 헌법적 개혁 과제를 개헌이라는 블랙홀로 지워나가려는 의도다. 박근혜체제의 헌법파괴가 초래한 권력의 빈 공간을 차지하려는 탐욕의 결과다. 주권 찬탈이다. 이제라도 국회는 주권자의 명령에 귀 기울여야 한다. 과거 국민의 경고를 무시했던 박근혜체제의 협력자들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직시하기를 경고한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수도 없이 확인했던 반면교사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요구에 구체적인 입법으로 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헌법적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인적 청산 대상이 되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선거권이 없는 사람들, 소수이기에 낙인과 차별에 신음하는 사람들, 약자이기에 착취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대변하기 위해 주권자가 나설 것이다.
헌법 개정은 국회 의결 절차를 삭제한 채 오롯이 주권자의 몫이 될 것이다. 주권자는 외침과 저항을 넘어 자기조직의 과제를 최종적 해법으로 가지고 있다. 국민을 모독하는 껍데기 대의민주주의를 버릴 수 있어야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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