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의 마음으로… 고통 나누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
“때가 되면 인연이 합할 것이고 그저 묵묵히 주어진 일에 열과 성을 다하면 모든 게 이뤄지게 돼 있습니다. 그걸 바로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합니다”
로터스월드가 어떻게 불교계의 대표적인 국제개발협력 NGO 단체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성관 스님은 이 같이 답했다.
제3세계에 부처님의 자비와 같은 연꽃을 뿌리내리는 로터스월드 이사장 성관 스님은 캄보디아에 아동센터를 설립하고 아이들의 사회 진출을 위한 직업 전문학교를 만든 것도 모자라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는 “전생에 지은 죄가 많은 탓에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면서 죗값을 치르고 있다”며 “남을 돌보는 마음으로 고통을 함께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남을 돕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스님의 모습은, 스님의 방 한가운데 자리 잡은 천진불의 순수한 미소와도 닿아 있었다. 성관 스님에게 로터스 월드의 성과와 비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혼란스러운 현 시국을 타개할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Q. 불교계의 여러 요직을 두루 맡았을 뿐만 아니라 불교계를 대표하는 국제개발 NGO 단체인 로터스월드의 이사장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A. 로터스 월드의 시작은 “불교도 제3세계의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면서 고통을 나누는 활동을 전개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 사실 이 같은 생각은 지난 1996년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영감을 얻었다. 당시 다른 스님들과 함께 캄보디아에서 앙코르와트 유적지를 관람하면서 아시아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한참 감상에 젖어 있었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자 수십 명의 걸인이 주위를 둘러싸고 우리에게 구걸하고 있었다. 이 순간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앙코르와트 같은 엄청난 문화유산을 만든 민족이 이토록 비참하게 살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순간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느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곳에서 오랜 내전으로 말미암은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과 교육기회를 제공하며 함께 생을 마쳐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 속에 지난 2004년 로터스월드를 설립했다.
설립 초기에는 부모가 없거나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보육 사업을 시작했는데 점점 사업이 확대되면서 지금은 학교까지 만들어졌고, 여기서 성장한 아이들이 사회에 안전하게 발 디딜 수 있도록 직업교육까지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Q. 로터스월드 캄보디아 아동센터도 11년째를 맞았다. 국제기구들 사이에서는 보육시설을 지양하자는 흐름이 추세인데, 아동센터의 앞으로 운영 계획은.
A. 국제기구들 사이에서 이 같은 흐름이 추세인 이유는 부모 형제와 함께 유대관계를 맺으며 자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니세프 등 아동 연구전문기관들은 부모나 형제 등 가족을 떠나서 생활하는 보육시설을 지양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보육 중심이었던 센터를 교육 중심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지금 보육 중인 40여 명의 아이들 외에는 새로운 아이들을 받지 않고 있다. 대신 16세 이상 가정이 빈곤한 남녀 아이들을 대상으로 1년에 20명가량 제빵기술이나 미용기술 등 직업 교육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다양한 기술 교육을 펼칠 예정이다. 최종적으로는 10~20년 사이에 고등교육기관인 대학까지 설립해 아이들의 사회 진출을 돕고, 궁극에는 캄보디아에 이를 넘겨주고 돌아오는 것이 로터스월드의 목표다.
Q. 지난 2015년 통계청 종교인구 조사에서 불교 인구가 많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불교계에서 젊은 층을 위한 포교 등에 소홀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A. 우선 이번 통계조사는 기존의 전수조사 방식과는 달리 20%의 표본가구에 대해 사전에 인터넷 조사를 하는 방법으로 실시 됐는데 이는 고령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불교계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등으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의 포교에 소극적이었거나 활발한 사회 참여가 안 된 부분은 우리 불교계에서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불교는 4차산업으로 넘어가는 작금의 현실에 다른 종교보다 포교에 훨씬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데 사찰의 위치나 자연환경, 수행환경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같은 좋은 조건을 잘 활용해 사회에 이바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역량을 길러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그 때문에 불교계에서도 역량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그 인재들이 국민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불교를 어떤 방식으로 현대 사회에 맞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종교는 항상 국민들의 편에서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 이는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에 적용되는 진리다. 불교 인구가 감소하거나 증가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불교계가 어떻게 바뀌고 어떤 방향성을 갖고 나아갈지가 중요한 것이다.
Q.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현상과 탈 종교화 추세에 한국 불교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면.
A. 이제 종교 자체가 중요시되는 시대는 지났다. 각 종교가 지닌 가치가 세상 사람들의 삶과 정신 속에서 어떻게 녹아들어 역할을 하는 지가 중요해졌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신앙으로서의 불교를 강조하기보다 불교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작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의 경우 불교가 각계각층에 녹아들어 있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다. 국민들의 삶 자체가 불교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앞으로 한국에서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사회에 참여하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Q. 최순실 게이트 등 국정농단으로 나라 안팎이 혼란스럽다. 현재의 국가적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나가면 좋겠는지.
A. 불교 용어로 고락의 결과를 가져온 선악 행위를 ‘업연’이라고 한다. 지금의 혼란스러움도 이 업연이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이때까지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이 함께 해온 행위, 생각, 말 등의 총화가 지금의 사태에 업연으로 작용한 것이다. 물론 문제를 일으킨 이들은 따로 있지만, 우선은 모두가 스스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쳐야 새로운 비전 제시가 가능하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피해갈 수 없다면 우선은 받아들인 다음에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제도적 보완 등을 통해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더불어 위안부 문제나 사드 문제 등 안보나 외교 문제 같은 민족사적인 문제는 여야가 뜻을 모아 국민과 함께 협의 절차를 거쳐 합의를 이끌어 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원수를 대하듯 서로 헐뜯고 싸우며 갈등의 벽을 높인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번의 어려움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국민들의 뜻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Q.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세상에 사람은 많다. 하지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이다. 거짓말이나 신의를 저버리는 등의 행동이 만연한 상태다. 그 때문에 도덕적, 윤리적 회복을 위해서는 지도자부터 몸소 행동해야 한다. 적어도 어떤 조직을 맡고 지도자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남이 나를 신뢰하기 전에 내가 나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3가지 리더십이 있다. 첫 번째는 직위로서 갖는 리더십인데 이는 내가 맡은 역할이나 자리를 통해 발휘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 두 번째는 전문성으로서의 리더십이 있다. 조직에 대한 이해와 업무 수행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세 번째 리더십은 도덕적, 윤리적 리더십이다. 3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리더십이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제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 같은 리더십을 적재적소에 발휘하고 다시는 지금과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게 국민의 뜻이다.
이명관ㆍ송승윤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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