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밥 딜런과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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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문화계를 달군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일 것이다. 가수 밥 딜런만을 기억하기에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시인, 화가’로 돼 있다. 밥 딜런의 노랫말은 미국의 고등학교와 대학의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고 몇 해째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본명이 로버트 앨런 지머맨으로, 밥 딜런이라는 이름은 자신이 사랑하고 동경했던 영국의 시인 ‘딜런 토머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2014년 국내에서 개봉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에서 인용된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세요’(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가 바로 딜런 토머스의 시다.

이 시는 딜런 토머스가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지었다고 하는데 ‘빛이 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세요’라는 구절에서 마지막까지 죽음과 치열히 맞서 싸우라고 응원하는 아들의 마음이 잘 전해진다. 딜런 토마스는 193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 시인으로 낭송의 달인이었으며 소리와 운율을 중시한 음유시적 전통을 지켰다. 밥 딜런은 그러한 딜런 토머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이다.

사람이 하늘을 얼마나 올려다봐야

진정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귀를 기울여야

타인의 비명을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될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 밥 딜런, ‘바람만이 아는 대답’ 부분

스웨덴 학술원의 사라 다니우스 사무총장은 수상 발표 직후 한 인터뷰에서, “밥 딜런은 귀를 위한 시를 쓴다”고 표현하였다. “이천오백 년 전 호메로스와 사포의 시를 지금까지 우리가 읽고 즐긴다면 밥 딜런 또한 읽을 수 있고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수상 배경을 밝혔다. 노래하는 음유 시인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문학의 경계를 허물고 대중문학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밥 딜런은 ‘무엇’으로 규정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밥 딜런의 자서전이나 평전을 읽어보면 그는 추종자에 의해 교주가 될 마음이 없었으며 무엇에도 속박당하기 싫어했다. 그에게는 자유와 평화가 소중했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만약 밥 딜런이 우리나라에 살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1941년생인 그는 1960년대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저항 예술가로 찍혀 옥고를 치루었을 것이고 그의 노래는 금지곡이 됐을 것이다. 2010년대에는 일각에서 그를 종북좌파라고 지칭했을 것이며 노벨문학상은커녕 블랙리스트에 올라 공연이 취소되고 이유를 모르는 핍박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3대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받아 많은 문학인들의 희망이 된 한강 소설가도 80년 광주를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로 인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고 노벨문학상 후보인 고은 시인도 마찬가지다. 집권자의 입맛에 맞지 않은 문학작품을 썼거나 영화 또는 연극 등을 제작했다고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예술인들이 불온한 국민으로 분류돼 각종 불이익을 받았다고 한다. 

블랙리스트에서 당신 이름을 봤다고 이 땅의 진정한 문화예술인으로 거듭난 걸 축하한다고 하는 사람, 나는 왜 그 명단에서 빠졌느냐고 항의하고 불쾌해 하는 사람 등 작금의 사태는 코미디에 가깝다.

 

참된 예술은 현실에 안주하고 순응하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예술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곰곰 생각해본다.

 

박설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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